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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꼬방 샘들이 교실에서 직접 실천하신 알찬 사례들이 담겨 있는 고농축 고영양의 연수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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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연수 원고 : 내맘대로 ‘한 학기 한 권 읽기’ 시즌 투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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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이미지강상준
2019-08-12 13: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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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맘대로 ‘한 학기 한 권 읽기’ 시즌 투
- ‘한 권 읽기’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
 
김영희 ∥ 수원 천천고등학교 blog.naver.com/hehe26
 
[prologue] 안되겠어, 뭔가 해야만 해 (feat. 물꼬방에 붙어있고 싶다고)
가끔 혼자 앉아 생각을 해본다. “물꼬방님들을 만나지 않았음 어떤 교사가 됐을까.”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분들이 공감하실 것 같다. 삶을 바꾸는 힘이 있는 모임이니까. 이 집단의 일원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과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전혀 다른 대화를 나누고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됐겠지.
숟가락 들 힘이 있을 때까지 붙어 있고 싶은데, 애정이 큰 만큼 두려운 마음도 크다. “여기서 뭔가를 해야 버텨낼 수 있을 텐데.” 워낙 멋진 이들이 모인 집단이라 손 놓고 지내다보면 도태될 수 있겠단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거짓말이다. 자주 든다. 맨날 생각한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한다고 이 착한 사람들이 나한테 “게을러서 싫어, 나가.” 하진 않겠지만, 혼자 자괴감 느끼다 뿅 사라지게 될까 겁이 난다.
자꾸자꾸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려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거. 내가 사랑하는 집단인 물꼬방에 붙어 있으려고. 제가 이렇게 얕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1. 멋진 말만 하고 싶은데.
모든 수업에 의미를 싣고 싶다. 가능성 여부와 상관 없이, 그런 욕심을 갖고 있다.
이건 다 물꼬방 때문인데, 이 모임에서 배운 독서교육 방법들을 활용하다 보니 눈이 너무 높아졌다. ‘의미 있는 수업’ ‘뿌듯한 수업’을 평가하는 기준의 기본값이 아-주 높아져서, 수행평가가 아닌 교과서 수업에 웬만해선 만족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책 한 권을 제대로 읽고 수행평가를 할 땐 내가 학생들의 사고와 삶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고, 세상을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는 것 같아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데. 교과서 제재만 들어가면 기대치를 낮추고(‘나는 좀더 멋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바탕글이 너무 재미없으니 어쩔 수 없지.’ ‘뭐야, 교과서 만드는 사람들은 뭔 생각으로 이 글 실었대. 요즘 나온 책들도 좀 읽으세요.’) 유체이탈할 준비를 한다. ‘교과서 수업은 그게 그거지. 해야 되니까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먼저 하고 들어가는 내가 맘에 들지 않았다.
교과서 수업도 수행평가처럼 ‘기대되는’ 마음으로 진행할 순 없을까. 수행평가 때에 읽는 책이랑 교과서 수업을 엮어보면 좀더 멋진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난 1년 내내 멋진 말만 하고 싶단 말이야.
 
2. ‘한 권 읽기’와 ‘교과서’를 엮어보자 : 어떤 ‘가치’를 전하고 싶나요
국어과 성취기준은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성격이 있어서 교사가 학생들과 이야기 하고픈 내용에 무게를 두거나 외부 지문을 가지고 와도 결손이 생기지 않는다. 나름 선진적인 교육과정(완벽하다는 건 아니지만.). 수업시간에 교과서 학습 활동을 다 다루지 않아도 된다. 우리 일은 성취기준을 가르치는 것이지 교과서를 숙지시키는 게 아니다.
지난해엔 단원 차원으로 접근해서 그때그때의 수업 주제를 생각했다면. 올해엔 한 해, 학기 단위로 수업의 큰 줄기를 세운 뒤 ‘한 권 읽기’용 단행본, 교과서 제재(혹은 ‘엮어 읽기’ 자료로 배부되는 글)마다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IMG_0117.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73pixel, 세로 1237pixel2019학년도 수업은 ‘불행(1학기)→연대(2학기)’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국어시간에 다루는 글들은 대체로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태자’라는 주제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은데, 수업을 하다 애들을 보면 (생각 없어 보일까봐 말은 못 하지만) “내가 왜?” 라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학생들이 은근히 많다.
“맞아요, 선생님. 도와야죠.”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는 선한 행동의 동인이 그저 ‘개인의 착한 심성’에 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여기는 편이라 그것도 별로다.
1학기 수업 목표는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아는 것.
빈곤, 전쟁, 환경 파괴처럼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자기가 뭘 잘못해서 벌을 받는 게 아니다. 그냥, 그곳에 존재했단 이유로 불행을 떠안게 됐단 걸 애들이 알았음 좋겠다. 억울한 이들을 향해 '네 일이니까 알아서 해' 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들을 작품들로, 사례들로 공부하고 있다.
‘한 권 읽기’ 도서는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현대인의 삶을, 그리고 그들이 부당하게 짊어지게 된 고통들을(현 시대의 문제들을), 완벽한 구성으로, 아름다운 문장에 실어 제시하는 작가이므로. 이보다 좋은 선택지는 없었다.
학생들은 일지를 쓰며 책을 읽었고,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를 택해 ‘질문으로 깊이 읽기’ 활동을 했다(결과물은 일지 20점, 문답 보고서 10점으로 수행평가에 반영됐다.).
 
 
 
 
슬픔을 통해 작가가 전하려 했던 것
나는 글 쓰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초등학생 때는 커뮤니티에 소설을 올려 2800개가 넘는 공유 수도 받아봤다. 가끔 메모장에 시와 소설을 적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좋은 글’이 무엇인지를 알지는 못했다. 매번 그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느날 국어 수행으로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들을 읽게 되었다. 귀에 익은 이름인데. 깊이 생각해보니 노래 ‘비행운’의 모티프가 된 소설의 작가였다.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의 주인공! 생각만 해도 너무 설렜다. 그리고 내 기대에 걸맞게 김애란 작가의 글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우선 김애란 작가의 소설은 너무 탁하다. 탁하고, 흐리고, 어딘가 회색빛이 돈다. 마치 가난한 사람이 곰팡이 낀 천장을 바라보며 찔끔찔끔 목숨을 이어가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아프거나 사연이 있는 슬픈 사람이었다. 궁핍한 환경에서 노쇠한 할머니와 살아가는 찬성, 주인에게 버려진 노견, 다문화 가정이기도 하면서도 편모 가정의 자녀인 재이. 그들을 보며 하나의 의문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김애란 작가의 글은, 왜 이렇게 하나같이 슬프지? 이 슬픔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싶었던 거지?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여운이 오래 남은 건지, 마음 한켠이 너무 허했다. 왜냐면, 김애란 작가의 소설은,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단지 소설이란 걸 알고 있지만. 터닝메카드와 강아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작은 아이와, 그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하는 할머니와, 우럭 미역국으로 아들의 생일상을 준비하는 엄마와, 피부가 까무잡잡하지만 정체성은 한국인인 그런 중학생이 세상 곳곳에 있을 것만 같아서. 그리고 내가 소설 속 인물들처럼 그들을 외면했을까봐 무서웠다. 아마도 김애란 작가의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책에 실린 소설들을 비교했을 때, 인물들을 제외하면 크게 다른 내용이 없다. 주인공들이 죄다 사회적 약자였고, 약자이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었던 사건들로 이야기가 전개되니까.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독자인 나에게 슬픈 마음을 심어주었다. 이것은 김애란 작가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노견인 에반의 전 주인이 책임감과 사랑으로 에반을 끝까지 보살폈다면, 만약 찬성이의 가정이 조금이라도 덜 궁핍했다면, 재이가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인기인이었다면, 만약 ‘노인’이 폐지를 줍는 사람이 아니라 우락부락한 아저씨였다면, 이런 슬픈 결말로 소설이 맺어졌을까? 허구라 이야기하기엔 너무나 현실적이다. 이런 약자 혐오가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김애란 작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소설에 담아낸 것이다.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주인공인 노찬성과 재이는 둘 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인 선택을 하지 못했다. 찬성은 본인의 욕구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에반을 떠나보냈고, 재이는 노인의 생사 앞에서 본인의 라이언 인형을 챙기기에 바빴다. 찬성은 자꾸만 ‘용서’라는 말을 되뇌었지만 끝내 입으로 토해내진 못했다. CCTV 영상에 나온 재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재이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물론 그들이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정말, ‘현대인의 낮은 도덕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런 상황들을 그려냈을까? 아니다. 그랬다면 찬성은 재벌 3세로 태어나 자라게 하고 재이는 잘나가는 일진 무리의 일원으로 설정했을 것이다. 기댈 곳 없는 외톨이들이 아니라. 작가는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려주고 싶었던 거다.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그것이 현재 그들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려주고 싶어서.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
김애란 작가는 우리에게 끝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사회적으로 약자인 사람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이별을 겪기엔 한없이 어린 아이가 (뜻도 모르는) 용서를 빌며 울지 않도록, 누구보다 주인을 사랑한 강아지가 버려지는 일이 없도록. 또래 친구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만의 윤리적 기준을 설정할 여유조차 없었던 중학생이 생겨나지 않도록.
아마도 좋은 글은 이런 글이 아닐까 싶다. 필력도 필력이고 문장이나 문법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 마음의 깊은 곳, 그 언저리의 종을 몇 번이고 울리는 글. 세상의 부조리함과 누군가의 아픔을 알리는 글. 그게 정말로 좋은 글이다.
 
 
무엇이 지금의 재이를 만들었을까
소설은 재이의 엄마인 ‘나’가 재이를 위한 미역국을 끓이며 시작한다. 우럭 미역국은 다른 미역국보다 우럭을 손질하고, 뼈국물을 우려내는 등 유난히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이러한 우럭 미역국을 끓이는 장면에서 재이를 향한 ‘나’의 진득한 모성애가 잘 드러난다. ‘나’는 재이를 아주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 그 사랑은 너무 많아 넘쳐 흐르기에 맹목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맹목적인 모성애로 ‘나’는 재이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린 아이니까’라고 생각하며 재이를 감싸고 걱정한다. 이러한 맹목적인 모성애는 분명히 잘못됐는데 나는 이것이 순전히 의 탓은 아니라고 느껴진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나’는 동남아시아인인 재이의 아빠와 결혼하며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시선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그러한 시선과 행동들은 ‘나’의 자존감까지 갉아먹었다. 그 후 재이의 아빠와 이혼하고 여러모로 여건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홀로 재이를 꿋꿋이 키워나갔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아들 재이는 착하고 바른 아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가졌고,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세상의 시선 속에서도 잘 자라준 재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렇게 ‘나’는 버려진 자존감을 재이를 바르고, 착하게 키웠다고 여기며 회복하려 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만큼 재이는 바르고, 착한 아이가 아니다. 10대 아이들에게 맞고 쓰러져 있는 노인을 보고서도 구해주지 않고 지나치고, 경찰관에게 거짓말까지 한다. ‘나’는 분명히 최선을 다해 재이를 바르게 키우려고 노력했을 텐데 무엇이 현재의 재이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재이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렸을 때부터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받으며 자라왔다. 그 속에서 재이는 소외되고 항상 외로웠으며 많은 부분에서 결함이 생겼을 것이다. 재이는 노인이 폭행당하는 것을 보고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자신이 노인보다 우월하다는 생각과 쾌감을 느꼈을 것인데 이러한 모습은 재이가 윤리적인 부분에서 결함이 생겼음을 보여준다. 또한 재이는 친구가 없고 항상 약자이기에 선과 악이 아닌 주변 아이들의 생각과 의견에 기준을 두어 행동하며 윤리적 기준이 올바르지 못했다. 재이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지나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지만 재이가 어떤 주변 환경에서 자랐을지를 생각해보면 재이가 윤리적인 부분에 결함이 있고,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것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과연 우리가 항상 소외되고 차별받는 삶 속에서 올바르고 윤리적인 행동과 생각을 기대할 수 있을까.
소설의 제목이 ‘가리는 손’인 이유는 우리 모두가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이는 자신의 입을 가려 웃는 모습을 감추고, ‘나’는 자신의 눈을 가려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재이의 모습만 보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적 소수자들을 차별한다는 사실을 가리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의 백인이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거나 제스처를 취하면 몹시 분노하며 욕하고, 비난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이 동남아시아인이나 흑인을 차별한다는 사실은 철저히 외면한다. ‘우리보다 못 사는 국가의 사람들이니 가난할 거야’, ‘우리나라에 돈 벌려고 들어왔으니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이네’ 등의 편견을 가지고 알게 모르게 차별과 편견의 말들을 쏟아낸다. 명백히 잘못된 행동들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미 이러한 편견과 차별의 시선이 너무 깊이 뿌리박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화 없이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이러한 잘못된 행동들을 ‘가리고’ 보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는 모두 잠재적 가해자가 될 뿐이다. 깊게 박혀 있다고 해서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또다른 재이와 재이의 엄마, 그리고 재이의 아빠가 만들어지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사회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라면 우선 내 눈을 ‘가린’ 손부터 치우고 그동안 가졌던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 그리고 편견의 시선부터 제대로 다듬는 것이 어떨까. 우리는 언제까지 가리기만 할 것인가.
 
 
‘한 권 읽기’에서 중점 두고 다룬 주제를 이어 나가기 위해 교과서 재제 <춘향전>과 <종탑 아래에서(윤홍길)>를 가져왔다. 수업에서 초점 둔 바는, ‘삶을 의지대로 이끌어가지 못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눈을 두지 않는 것일 뿐,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없는 존재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상황의 원인은 대체로 ‘어느 시대에, 어느 장소에서 태어났는가’ 밖에 없다는 점도. 운 때문에 이런 일들을 겪는 게 정당해?”라는 질문을 던지는 수업을 하고 싶었다. 한 학기 내내. 그래야 머릿속에 인이 박힐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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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탑 아래에서> 학습이 끝난 뒤 진행한 마무리 글쓰기
 
‘한 권 읽기’와 교과서 수업을 연계 운영했을 때 얻게 되는 큰 이점 중 하나는, 수업시간에 언급한 가치들에 대한 질문들을 지필평가로 다시 강조할 수 있단 점이다. 애들은 그 내용을 ‘공부’해야 한다.
물론 지필과 수행 중 유의미한 것을 택하라 한다면 무조건 수행평가이지만, 여건 상 수행 100%이나, 지필 1회를 할 수 없는 분들도 계시니까(=우리 학교).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지필 횟수 못 줄인대. 올해도 망했어.”라고 슬퍼하는 것보다 유의미한 활용 방안을 생각하는 일이 정신 건강에 좋다.
‘가치’를 ‘학습’시킨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실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들은 ‘이거 진짜 중요해’라고 형식적으로(이 경우엔 지필평가) 짚어 주는 일도 나쁘지 않단 생각을 한다.
평소보다 일찍 찾아온 더위 때문에 우리 학교는 5월부터 에어컨을 틀기 시작했는데, 학생들 앞에서 “적당한 더위는 견디는 것도 필요해. 에어컨 너무 많이 쓰면 북극곰이 죽는다잖아.”라고 말했더니 “그런데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충격의 포인트는, 그 발언에 반감이나 반항심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는 점. 진짜 순수하게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었는데 그 장면이 잊히지가 않는다. , 내 선택이 누군가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단 말에 그런데요?’라는 반응을 (너무나 투명하게) 보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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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73pixel, 세로 1613pixel교사가 전하는 ‘가치’들이 학생들의 마음에 남아 지속적인 실천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은 아름답다. 그런 변화를 믿고 우리는 수업을 한다. 하지만, 배운 바를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실천’으로 이어가는 건 진짜 훌륭한, 일부의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많은 학생들에겐 이 내용을 ‘공부를 하게 해서라도(지필평가 용으로 제시해서)’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일이 필요하겠다는 게 지금의 생각이다(지필평가를 없앨 수 없는 환경이라면, 이렇게라도 의미 부여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 지필평가 찬성론자는 아니다.). 적어도 그런데요?’라는 말을 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알 순 있겠지.
다시 교육과정 재구성 이야기로 돌아가서,
2학기 활동 초점은 구체적인 연대의 방법에 대한 고민이다.
과거의 나였다면(비장한 교사 시절) ‘연대! 진짜 중요한 건데 이 정도 실천은 해야지.’ ‘얘들아, 사람이면 이래야 하는 거야’라며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애들을 밀어붙였겠지만 올해엔 연대의 방식과 정도가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학생들이 직접 머리를 써서 그리고 마음을 쏟아 사고/행동의 기준을 만들게 하는 게 목표다.
나는 비거니즘과 페미니즘을 ‘지향’하지만 매일 일정량의 육류를 먹고 아침마다 공들여 화장을 한다(고데도 한다!).
‘지향’하는 이념과 ‘현실의 나’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게 고통스럽고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고민하고 점진적으로 나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괜찮은 세상을 만드는 실천’의 방식을 정답처럼 제시하는 것보단, (다수가 실천하지 못할 모범적인 말보다는) 실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는 끊임없는 고민/선택이 함께 한다는 걸 알려주는 게 더 큰 도움이 되리라 여긴다.
혼란스러운 게 당연해, 무 자르듯 ‘이거다’ 결정하고 완전무결하게 실천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
그래야 ‘완벽한 실천’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혐오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치열한 활동가와 비교했을 때) 나이브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옳은 가치를 지향하는 일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 결점 없는 실천을 하지 못한단 점에서 오는 ‘부끄러움’이 더 치열히 소리치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깎아내리는 요인이 되는 경우도.
사람마다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얼마나 실천을 하고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열심히 고민했는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는지도 못지않게 중요한 거란 이야길 수업시간에 했으면 좋겠다.
현안 앞에서 더 나은 선택을 위해 꾸준히 고민하는 일을 하는 건 당연한 거다, 멋지게 완벽한 실천을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하지 마라, 더 나아지면 되는 거야, 네가 부끄럽다고 해서 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조롱해선 안 돼, 그런 이야기를 하겠다는 욕심을 품은 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한 권 읽기’ 단행본으로는 비거니즘을 주제로 《아무튼 비건(김한민)》,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하재영)》, 《고기로 태어나서(한승태)》를 택했다. 학생들은 이 중 하나를 읽고 ‘책 대화하기’ 활동을 한다. 교과서 제재는 <허생전(박지원)>,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성석제)>, <신의 방(김선우)>, <등나무 운동장 이야기(정기용)>을 엮어 읽는다.
 
3. ‘한 권 읽기’,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을까 : 문법 수업도 커버 됩니까
“1년 내내 멋진 이야기만 하고 싶다”가 목표라니. 난 정말 엄청난 야심가였군.
목표를 현실화하자면, 떠올릴 수밖에 없는 질문이 있다. “문법은?”
문법 수업을 말아먹는 이유를 생각해보자니, 이걸 배우는 이유를 학생들 앞에서 설득력 있게 말하지 못해서인 것 같다.
“‘문법 지식을’ ‘정확하게’ ‘더 많은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게 ‘좋은 수업’인가?”라는 의문이 있다.
문법 수업에 의미를 실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독서교육에 상당히 경도되어 있다(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학생들과 책을 읽고 사고를 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나가는 일은, 그야말로 ‘의미 투성이’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이 학생의 삶과 세상에 기여하고 있단 확신이 든다. 이건 정말 멋진 일이야, 라고 힘주어 말할 수도 있고.
‘지식을 잘 전달하는 것’을 넘어선 뭔가를 하고 싶단 욕심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분들 모두 같은 생각이실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여기 앉아 계신 거잖아요, 이 소중한 주말에. 국어 교사들은 의미에 살고 의미에 죽는 사람들이니까.
여튼, 그래서! 문법수업에 ‘한 권 읽기’를 도입해보았다. 뿅☆
결론 먼저 말씀드리자면, 조금이나마 가능성을 발견한 느낌이다. 나를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문법 수업의 의미’를 찾은 것 같다(그리고 나는 독서교육에 더욱 경도되어 버렸다!).
1학기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라는 마음으로 방과후학교 문법 수업에 ‘한 권 읽기’를 도입해 김정선 교열자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하다고요?》를 함께 읽고 수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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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읽기로 진행한 문법 수업 활동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의 소제목들
 
소제목들을 보면 짐작하시겠지만, 글쓰기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문법 지식들이 실려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문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실험적으로 시작한 활동이 너무 성공적으로 끝나서, 2학기엔 정규수업에 이 책을 가져와 활용하기로 했다. 동료님과 수업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
수업 방식은 크게 특별하지 않았다. 지식정보전달 도서를 읽고 진행하던 독서교육의 방법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학생들은 매 시간 책을 한 꼭지씩 읽고 새롭게 알게 된 정보를 정리한 뒤(25-30분), 잘못된 문장과 바르게 고친 사례를 만들어 칠판에 써 공유했다. 수정 문장을 만들 때에 어떤 점에 초점을 두었는지도 함께 이야기하도록 했다(15-20분). 학생 활동이 끝나면 교사는 그날 다룬 내용 속에 포함되어 있는 문법 개념들을 간략히 정리해서 설명하고(10분), 학생들은 그날 배우고 생각한 것을 짧은 글로 써서 정리하며 마무리(5분).
이 책이 특히 마음에 드는 이유는, 문법 공부가 필요한 이유를 단순히 ‘모르면 없어 보이니까’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좋은 문장을 쓰는 일’은 ‘방만한 사고를 하지 않는 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아, 이거지. 이게 문법을 배우는 이유지.
 
문제는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쓰는 데 있다. 어떤 표현은 한번 쓰면 그 편리함에 중독되어 자꾸 쓰게 된다.'적·의를 보이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니 아예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편리함의 중독자인지 살피라는 것뿐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은 어떤가.
1. 문제의 해결
2. 음악 취향의 형성 시기
3. 노조 지도부와의 협력
4. 문제 해결은 그다음의 일이다.
5. 이제는 모든 걸 혼자의 힘으로 해내야만 한다.
6. 부모와의 화해가 우선이다.
7. 선수들은 소속 팀에서의 활약 여부에 따라 올스타에 뽑힐 수 있다.
8. 그동안의 올바른 독서 습관을 통해 독서 체력이 튼튼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어떤 글을 읽어도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앞에 나열한 문장 중 '-의'를 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문장은,
1. 문제 해결
4. 문제 해결은 그다음 일이다.
5. 이제는 모든 걸 혼자 힘으로 해내야만 한다.
8. 그동안 올바른 독서 습관을 통해 독서 체력이 튼튼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어떤 글을 읽어도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등이다. '-의'를 빼도 아무 문제가 없는 문장에까지 굳이 '-의'를 집어넣는 건 중독 때문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가 하면
2. 음악 취향이 형성되는 시기
3. 노조 지도부와 협력하는 일
6. 부모와 화해하는 일이 우선이다.
7. 선수들은 소속 팀에서 보이는 활약 여부에 따라 올스타에 뽑힐 수 있다.
등은 '-의'를 빼는 대신 문장 일부를 다듬어 좀 더 다양한 표현을 담게 되었다.
 
'-'이나 '-'를 반복해서 쓰는 이유는 습관이 들어서거나 아니면 다른 표현을 쓰는 것이 귀찮아서이리라. 중독이란 게 그렇잖은가. 습관적으로 편한 길을 택하는 것. 물론 선택은 쓰는 사람의 몫이지만.(22-24쪽)
 
나와 수업을 한 친구들이, 단순히 문법 문제들을 몇 개 맞출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적확한 문장으로 내 생각과 느낌을 옮기는 일의 쾌감, 방만한 문장과 예리한 문장을 구분할 때 느낄 수 있는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수정 사례.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73pixel, 세로 587pixel우쭐함 같은 것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권 읽기’의 도움을 얻어 이러한 목표에 조금이나마 더 다가갈 수 있단 확신을 얻었다. 역시 ‘한 권 읽기’는 짱이야(←경도된 사람).
학생들이 ‘예리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이면을 보았음 하고, 다른 사람이 다 좋다니 나한테도 좋겠지란 자세로 살지 않았음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지를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닌 스스로의 사고로 판단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책을 읽는다.
올해를, ‘단행본으로 수업을 할 때 어디까지 욕심을 낼 수 있을지’를 실험하고 확인하는 시기로 삼고 있다. ‘한 권 읽기’를 문법, 나아가 쓰기 수업까지 적용하는 일은 책 ‘읽기’가 거둘 수 있는 효과를(그리고 독서교육이 지향하는 바를) 더욱 확장시키는 일이 될 수 있겠다. 그게 지금까지의 결론.
이를테면, 이런 거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읽고 ‘적확한 문장/방만한 문장’을 구별하는 공부를 한 뒤, 학생들은 1학기에 써냈던 생활글을 수정하게 된다.
다음은 내신 성적이 7-8등급 정도가 되는 학생이 1학기 과제로 제출한 생활글이다(원문을 그대로 옮겼으므로 문장 구조나 띄어쓰기, 맞춤법 등이 잘못된 내용이 많다.).
 
운동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다이어트, 식단관리, 헬스장, 힘들다, 하기싫다, 즐겁다 등. 운동을 좋아한다 한들 운동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거나 운동관련된 꿈은 타고나지 못하면 해서는 안돼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역시 몇 년전만해도 그랬다. 하지만 현제에 나에겐 운동이란 곧삶에 목적이자 내 인생을 완전히 바뀌어준 없어서는 안돼는 존재다. 혹시 당신들은 뛰어넘지 못하는 벽으로 인해 꿈을 포기한적 있는가? 사람으로부터 극심한 차별을 받은적은 있는가?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고 믿었던 사람에게 큰배신을 당한적이있는가? 날 차별하고 왕따시킨 사람으로부터 내가 변하고 과거에 내가 아닌 완전 다른 사람으로 변한뒤 “너참 멋있다”라고 나한테 잘해줄 때 그 감정을 느껴본적은 있는가? 이중에 겪은 경험은 있는가? 아마 별로없을 것이다. 혹시나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있거나 과거에 겪은사람들에게 나는 말해주고싶다. 너가변하면 된다 너가 어떤일이든 한가지만 파서 남들보다 널 괴롭히는 널 한심하게 보는 사람은 없어질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막막하고 멀해야하는지 모를수도 있다. 난 공부를 하라는게 아니다. 단지 현제에 지질한 내모습에 변화를 주라는 거다. 그 좋은 예로 내 과거사가 있다. 난 어릴때부터 육상선수라는 꿈을 가슴속에 불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각종질병, 천식, 아토피, 패렴, 위염등 죽을 고비도 겪었다. 거기다 운동도 못해 난 육상선수라는 꿈을 접게 되었다. 그렇게 꿈을 잃은 난 부모님에 강압에 어쩔수 없이 도시(수원)에 이사왔다. 어릴때부터 시골 토박이인 난 도시에 적응을 전혀 못했다. 매일논밭에서 친구들과 함깨 칼싸움하던 나에겐 처음보는 엘리베이터와 누군지 모른 사람들 또 높은건물들은 전혀 다른나라 다른세계에 온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못차리고 있을 때 난 새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그래도 애들이 사투리 신기하다 시골은 어떤곳이야? 라며 물어보며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그러다 어떤 친구 무리가 내가 촌스럽고 못생기고 키작고 약하다는 이유로 장애인 촌놈 심한욕으로 날 부르기 시작했고 심한 차별을 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때 3교시끝나고 애들이 날 끌고나와 교실앞에서 10명이 넘는 학생이 집단 구타를 하였다. 난 그순간 감정이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난다. 전혀 아프다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가 믿고 신뢰하던 친구3명중 2명은 동참해 날함깨 때렸고 한명은 미안하던지 내가 도움에 눈길로 눈을 마주어쳤는데 그친구는 내 시선을 피했다. 너무 절망적이었다. 자살하고 싶었고 이순간을 악마와 계획을 해서라도 피하고 싶었다. 세상에 오직 나 혼자같았다. 그렇게 난 진짜 딱 1년반만 버티자고 맘 먹고 그렇게 내 초등학교 생활을 막을 내렸다. 난 일부러 초등학교와 먼 중학교로 갔다.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겼는 자유 하지만 난 현제에 내 모습에 거이 증오에 가까운 엄청 싫어했다. 난 왜 이렇게 말랐지 왜 이렇게 못생겼지 왜 이렇게 멍청하고 잘하는건 하나 없지 하면서 중1을 그렇게 우울하게 보냈다. 그러다 중2 2학기쯤 어쩌다 텔레비전에 몸좋은 남자 몸짱을 보며 난 마치 홀린 듯 그때부터 미친 듯이 운동했다. [후략]
 
사람은 무엇에서 살아갈 힘을 얻나, 란 생각을 자주 한다. 나 혼자 내려 본 결론은 “내 발언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사람들이 높은 지위에 오르려 하는 것도, 더 많은 부를 취하려 하는 것도 결국 자신 가진 영향력을 극대화 하는 것에 목적을 둔 것 아닐까.
앞서 든 예는, 완성도가 낮은 글이다. 비문도, 맞춤법이 틀린 단어들도 많다. 내용도 거칠다. 고칠 부분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나는 1학년이 제출한 과제 중에서 이 글이 가장 좋았다. 투박하지만 이 사람의 생각과 삶 전체가 훅하고 끼쳐오는 느낌이라. 자존감, 혐오와 차별, 열정, 끈기 같은 것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고. 이런 글들이 ‘문장이 어색해서’, ‘철자가 틀려서’ 잘 쓰지 못한 것으로 절하되고 컴퓨터 휴지통에 들어가는 건 너무 아깝다(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성적이 좋지 않은 친구들이 오히려 솔직하고 내용 좋은 글들을 잘 써내는 것 같다. 거칠지만 진정성 있게.).
학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에 좀더 정리된 문장으로, 명료한 의미를 담아, (상황에 따라선) 명확한 발음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갖게 되길 바란다. 좋은 내용이 담겨 있어도 형식이 매끄럽지 못하면 사람들이 그 가치를 쉽게 파악할 수 없으니까.
학생이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도록 유도하고 ‘이건 정말 가치가 있어, 넌 정말 멋져.’라고 북돋워주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다(‘한 권 읽기’ 중 ‘시경험쓰기’ ‘서평쓰기’가 좋은 예가 된다.). 교사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멋진 일이 아닐까.
한 발 더 나아가 학생이 풀어놓은 ‘이야기’가 좀더 큰 매력을 갖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까지 맡고 싶다. 난 욕심쟁이니까. 자기가 갖고 있는 잠재력, 사고력 등을 남에게 비쳐 보일 때 그 내용에 더 큰 매력과 설득력을 실어주는 일. 이번 학기의 경험, 그리고 다음 학기의 계획을 통해 ‘한 권 읽기’로 그 지점까지 욕심을 낼 수 있겠단 용기를 가졌다.
 
[epilogue] 좋은 분위기에 ‘흠뻑 빠지는’ 일
물꼬방 이야기로 문을 열었으니, 다시 내가 사랑하는 집단을 찬양하며 글을 마쳐야지.
지난 겨울엔 물꼬방 친구들을 만나러 전국을 돌아다녔다(그래서 거지가 됐…….). 광주에서, 부산에서, 경주에서, 서울에서. 각지로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시간과 공간을 나눴다. 당시 나의 화두는 ‘타인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는데, (정근수당과 명절 상여금을 모두 털어 넣은) 여행을 통해 조금이나마 ‘좋은 시간’이란 이런 거구나, 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성공적인 여행이었다.
‘여행지’와 ‘만난 사람’이 매번 달랐지만, 각각의 장소와 각각의 사람들이 가진 취향/분위기를 제대로 느꼈다. 그래서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 같다. 세상을 떠나기 전, 주마등으로 떠오를만한 기억들을 많이 만들었다. ‘흠뻑 빠졌다’는 말은 너무 상투적이지만, 더 적확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 SNS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경로를 밟고 포토 스팟들을 찾았다면 그 기억들이 이렇게 따뜻하고 온전하게 남아있지 않았을 테다.
아, 중요한 건 ‘취향’이구나. 취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나 스스로도 내 삶에 충실해지고, 다른 사람과도 그걸 나눌 수 있겠다.
 
***
애들이 자신의 취향과 분위기를 만들어 나갈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자기 삶을 스스로 즐겁게 꾸려갈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 좋겠다. 이전까진 ‘독서교육’이라고 했을 때 되게 비장한 이유들을 많이 떠올렸는데, 지금은 바라는 것이 하나다. 학생들이 자기를 들여다보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추구하려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그러려면 책이 필요하다(기승전책. 난 경도된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 난 유튜브도 즐겨 보고 인스타그램도 ‘파워 유저’라 자칭할 정도로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이라, 새롭게 등장한 ‘현란한’ 매체들을 낮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것 나름의 효용과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진지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려면 책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재미있는’ 매체들을 접할수록 자꾸 깨닫는다. “아, 이만큼 놀았으니 이제 책 읽어야겠다.”란 생각이 들어서. 묵직한 생각거리를 주거나 새로운 면에 사고가 깨이게 하는 것은 역시 책이니까.
책을 읽으며 여가를 보내는 게 당연한 세대였던 나는 책읽기의 효용과 가치를 몸으로 체험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재미없는 걸 왜 읽어요’라는 말을 충분히 할 법 하다. 나라도 그러겠다. ‘재미’와 ‘흥미’가 제 1의 가치가 된 것 같은 세상 속에서 ‘다른 중요한 것’도 있단 걸 알려주고 싶다. 그러려면 역시 독서교육.
사실 더 큰 욕심은 나와 헤어져서도 꾸준히 책을 찾아 읽는 사람이 되었음 한다는 건데, 그래서 올해의 활동들을 (무리를 해서라도) ‘문장’에 무게 두고 있다. 멋진 문장을 보며 감탄하고 ‘나도 저렇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고 싶어서. 결국 뭔가를 꾸준히 해나가게 하는 힘은 “와, 멋져.”란 문장에 실려 있으니까.
학생들이 좋은 글, 매끄러운 글을 보고(혹은 발화를 듣고) 감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멋진 글이 좋은 노래, 맛있는 음식, 힙한 취향처럼 ‘따라하고 싶은 것’으로 인식됐으면 좋겠다. ‘좋은 것을 판별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국어수업이 되었음 좋겠고. 독서교육의 목표를 비장하게 잡지 않겠다 말해놓고, 엄청 거창하게 말했어. 핫하.
민망한 김영희는 휘릭- 사라집니다. 어쨌든.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가는 힘, 다른 사람과 그 행복을 나누는 힘을 키웠음 좋겠다. 그런 삶은 너무 행복하니까.
[부록1] ‘문답보고서’ 쓰기 전 모둠 활동 자료
◎ [1차시]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며 <가리는 손>의 내용을 이해해봅시다. 다음의 질문 중 3개를 택하여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내용 확인 질문]
 
‘재이’에 대한 인상. ‘재이’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특성 3가지 떠올리기)? 소설의 내용을 근거로 들어 이야기 해보자.
 
1-1 [1번 질문을 선택한 모둠은 반드시 이 질문을 선택하세요] 어린 시절부터 재이가 겪어왔을 부당한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짐작해서 이야기 나눠보자. 어떠한 경험들이 현재의 재이를 만들었을까?
 
2.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두각을 보이던 재이가 합창부를 그만 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재이에게 ‘눈에 띈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였을까? 내가 재이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말해보자.
 
3. 맞고 있는 노인을 보며 재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4. 재이는 노인이 맞는 장면을 보며 입을 가린다. 가리는 손 뒤로 재이가 지은 표정은 무엇이었을까?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소설의 내용을 근거로 들어 이야기 해보자.
 
5. 재이가 쓰러진 노인이 있는 장소로 다시 돌아와 ‘라이언 인형’을 가지고 간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재이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6. 재이가 엄마의 질문에 ‘틀딱’이라 대답하며 웃음을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틀딱’이라고 말할 때 재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7. 식사를 하던 재이가 방에 들어가 통화를 한 사람은 무엇일까?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작품 내용을 근거로 들어 말해보자.
 
8. 소설의 시작이 ‘엄마가 미역국을 끓이는 장면’으로 시작된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보자.
 
9. 재이의 엄마가 재이의 아빠를 선택하며 포기해야 했던 것들을 이야기해보자. 그것은 재이 엄마가 재이를 바라보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 자신이 선택한 질문의 번호와 소설을 이해하는 데에 그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를 쓰세요.
 
질문 번호 :
 
이 질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 :
 
 
 
 
 
 
 
 
◎ 모둠원과 함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봅시다.
 
 
 
내 생각+친구의 발언 중 멋진 것 메모하기
선택한 질문
 
선택한 질문
 
 
선택한 질문
 
 
 
 
◎ [가산점 문항] 오늘 활동을 통해 생각하고 느낀 점을 정리해봅시다(작품 이해에 초점 두세요!)
 
 
 
◎ [2차시] 모둠원과의 대화를 통해 <가리는 손>의 내용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해봅시다. 다음의 질문 중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은 것 2개를 선택해보세요.
 
[생각을 더 깊게 만드는 질문]
1. 소수자를 혐오하는 현상과 관련된 경험(간접 경험,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접한 것 모두 포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1-1. [1번 질문을 선택한 모둠은 반드시 이 질문을 선택하세요]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 ‘재이’와 ‘할아버지’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3. 재이가 매 맞는 노인을 앞에 두고 한 행동은 분명 옳지 않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재이의 잘못이라 할 수 있을까? 적절한 근거를 들어 생각을 밝혀보자.
4.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 소설을 권해주고 싶은 사람과 그 이유를 말해 보자.
5.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 일어나는 현상을 줄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6. ‘가리는 손’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7. 부모가 자녀의 행동을 무조건 신뢰하고 애정을 주는 것은 옳은 일일까?
 
◎ 모둠 대표 질문 2개를 정한 뒤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내 생각+친구의 발언 중 멋진 것 메모하기
선택한 질문
 
선택한 질문
 
 
 
 
 
◎ [가산점 문항1] 오늘 활동을 통해 생각하고 느낀 점을 정리해봅시다(작품에 대한 이해에 초점!)
 
 
 
 
◎ [가산점 문항2] 등장인물 한 명을 선택해서, 그를 향한 편지를 써봅시다(나도 등장인물이 되어서!).
상대방의 처지와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기. 명확한 표현을 사용해서 자기 생각을 정리해봅시다 :)
 
 
 
[부록2] ‘문답보고서’ 쓰기 진행 자료
◎ [1차시] 완성글의 예를 읽으며 활동의 감 잡기
 
 
학생 작품 예시
다음 작품들은 ‘질문으로 깊이 읽기’ 활동의 좋은 사례들입니다. 어떤 점에서 멋지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생각하며 읽어 보세요 :)
내가 글을 쓸 때에 팁이 될 만한 부분들을 밑줄 그어 표사해두기!
 
[예시1]
소설 제목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성석제)>
내가 선택한 질문 우리는 왜 이 소설을 읽고 감동을 느끼는가?
이 작품을 읽었을 때 가슴이 답답하고 미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감동을 받은 작품이 몇 개 되지 않는데, 내용의 진행 순서를 다시 읽어보면서 왜 이런 느낌을 받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시작은 ‘황만근의 실종’으로 동네 사람들이 모여 황만근에 대해 떠들던 장면이다. 여기서 잡힌 황만근의 이미지는 동네를 실실 웃으며 돌아다니면서 어른들에게 90도로 인사하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나오는 바보 같은 모습이었다. 이후는 ‘황만근가’의 가사를 해석하며 황만근의 천박하고 우스꽝스러운 바보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조금 걷다가 넘어져 머리를 박고, 실실 웃으면서 일어나 다시 걷고, 짧은 발음으로 국수를 사는 그런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가사의 후반을 해석하면서 황만근이 겪어온 나쁜 일들(아버지의 이른 사망, 아내의 사라짐)을 설명하며 마지막으로 아내가 황만근에게 경운기 사용법을 알려준 후부터 본격적인 이야기(작가의 의도)가 시작된다.
황만근에게 경운기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하고서야 작가는 ‘아이나 장정의 품삯의 반을 받으며 남들의 두 배를 일했던 그에게 경운기가 생기고, 한 사람 이상의 대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으로 그의 품성을 숨긴다. ‘숨긴다’? 그렇다. 작가는 그의 성품을 작품 군데군데에 숨겨서 알아볼 수 없게 했다. 사실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면 “어머니가 고등어를 먹고 싶어 해서 사라졌다”, “혼잣몸이 된 노인들에게는,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 더 자주 거름을 가져다 주었다” 등 떡밥을 던져놓았다.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에서 바보스러운 모습으로 이를 숨겼고, 민 씨와의 대화에서 단순한 황만근의 생각을 괄호를 통해 민 씨의 생각으로 표현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작가는 ‘황만근가’를 순서에 맞지 않게 해석했다. 이는 황만근의 본성을 그의 바보 같은 모습으로 숨겨 보이게 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즉, 우리로 하여금 황만근을 바보로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각을 가지게끔 작가가 만든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황만근의 진짜 사람 됨됨이를 차근차근 보여주고(남들이 꺼려하는 일에 나섬), 그것을 부각시키고(이장의 궐기대회 권유), 절정(민 씨와의 대화)에 도달한 뒤, 그의 죽음을 (그것도 다섯 줄 내로 무뚝뚝하게) 알린다. 이것을 도화선으로 작품의 앞에 심어진 떡밥과 우리에게 심어진 황만근에 대한 시각이 시한폭탄처럼 작용하여 그를 무시하던 마을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똑같은 감정인 슬픔, 미안함, 죄책감이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예시2]
소설 제목 <서른(김애란)>
내가 선택한 질문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지어낸 것일까?
강수인은 편지에서, 자신은 요즘 학원가를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라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강수인도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아르바이트하며 대학생활을 하던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그런 삶을 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강수인을 그런 삶으로 내몰았던 것일까? 밑의 세대들로부터 또 다른 제2의, 제3의 강수인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며 이 세상을 함께 바꾸자고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대학생이 예전에는 학생운동을 했고 현재는 다단계 판매를 한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했다. 즉 현재 사회문제의 시작은 대학생 때부터라는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들어감에 따라서 순식간에 빚쟁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과거에는 대학생이 ‘배운 사람’으로 통할지도 모르지만 현재는 그저 빚쟁이일 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열심히 공부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며 추상적인 미래를 제시한다. 하지만 현실은 과정을 보지 않고 누가 얼마나 노력했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일렬로 세워 놓고 앞에서부터 필요한 숫자만큼만 가져가는 것이다. 스펙이라는 영어 단어가 기계 같은 물건의 사양이나 규격을 의미하듯이, 우리 또한 이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스펙 좋은 부품이 된다. 그리고 마모된 부품을 교체하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가장 괜찮아 보이는 것을 뽑는다. 이런 악순환은 소설이 보여주는 다단계와 신기할 정도로 일치한다. 꿈으로 사람의 마음을 현혹하더니 굶주림으로 사람을 몰아붙이고 필요 없으면 내쫓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인간관계의 목적이 돈이 되고 사람이 무서워지는 세상 말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다단계 회사와 같은 주체는 무엇인가? 바로 우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는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그 죄를 묻기가 힘들다. 모두 살자고 하는 행동들이 아닌가? 하물며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민주주의 사회이다. 즉 우리가 가꾸어나가며 개개인이 이런 사회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때문에 소설을 통해서 저자는 우리 모두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다. 이제 이 사회는 바뀌어야 하고,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독자 개개인이며,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자고 말이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성세대에게, 그리고 사회를 이끌어나갈 학생들에게 묻고 있다. 물론 쉽게 답을 낼 수는 없지만 세상은 항상 먼저 문제를 제기함으로 인해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으로부터 지금까지 발전되어 왔다. 지금 당장은 어떠한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한다고 해도, 저자는 우리들에게 살아가는 동안 항상 그 답이 무엇일지 잊지 말고 생각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작품)
 
 
◎[중요!] 이 글들은 어떠한 점에서 ‘잘 쓴 글’로 평가되는 것일까? 친구들과 생각을 나눠봅시다.
 
 
 
 
◎ [안내사항] ‘질문으로 깊이 읽기’ 보고서의 채점 기준은 이렇습니다 :)
- 작중 인물의 선택에 대한 글쓴이(학생)의 판단이 타당하게 제시되었는가?
- 작품의 내용을 근거로 들며 생각을 전개하는가?
- 작품을 통해 제기되는 사회 문제에 대한 숙고가 이루어졌는가?
- 자신의 삶, 세상의 일과 연관 지어 이야기 하는가?
- 구체적이고 명확한 문장이 사용되었는가?
- 완결된 글의 형태를 지니는가(워드프로세서로 정리한 수정본을 제출하였는가?)?
- 분량 기준을 만족하는가?
 
 
◎ [2차시] 글의 얼개를 세워보기
 
 
[질문 정하기]
생각을 깊이 있게 이끌어낸 뒤 정리할 수 있을만한 질문 거리를 만들어 봅시다. 떠오르는 것들을 모두 써본 뒤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을 권합니다. 중요하다 여겨지는 것, 흥미롭다 여겨지는 것들을 몇 가지 정한 뒤 그것을 아우를 수 있는 질문을 만들 수도 있어요!
자신의 삶, 세상의 일과 연결 지어 이야기할 수 있는 질문일수록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가 많겠지요 :)
 
 
 참고소설을 읽고 만들 수 있는 질문의 종류
1. 작품을 더욱 정확하고 세심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질문
- 병수가 전하려던 것은 무엇인가?
- 민소와 은수가 헤어지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2. 작품 속에서 자세히 설명되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행동의 의도나 배경 설정, 사건의 의미를 문맥을 살펴 추론하는 질문
- 작가는 왜 소설의 배경을 도시화율 100%인 빈스토크로 했을까?
- 은수는 왜 민소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그를 도와주었을까?
- 편지 배달은 병수가 잘못해서 생긴 일인데 이 소설의 제목은 왜 ‘타클라마칸 배달사고’일까?)
3. 작품의 내용을 우리 사회와 비교하거나 적용해보는 질문
- 빈스토크와 우리 사회가 닮은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일까?
- 사막에서 실종된 민소를 찾기 위해 300만 명의 사람들이 스스로 시간을 투자하는데, 왜 아직도 이 세상의 누군가는 굶어죽고 또 누군가는 전쟁의 공포를 느끼는가?
 
 
 
 
 
[글감 떠올리기]
방금 정한 질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때에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글감을 떠오르는대로 정리해봅시다.
모둠 토의를 할 때 나왔던 이야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겠지요. 글의 흐름이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적절한 순서로 배치해보세요.
 
참고모둠 토의에서 오간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나열하는 일은, 완성된 글의 매력도를 크게 떨어뜨립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다시 반복하는 것은 재미가 없잖아요. 토의할 때 오간 이야기를 씨알로 삼아, 생각을 덧붙여보세요. 심화시키거나 확장시키거나. 국어샘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멋진 발상이 담기길! 기대하는 맘으로 기다리고 있을게요! :)
 
 
 
 
 
 
 
 
 
 
 
 
 
◎ [3∼4차시] 본격적으로 글을 써봅시다!
 
참고1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책 내용과 세상일을 연관 지어서 생각하기 바랍니다. 책의 어떤 부분이 이때까지 살아온 삶의 어느 부분에 가닿는지 돌아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 책을 읽어서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얻을지, 그 책 읽기를 여러분이 삶에서 어디에 쓸지를 생각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책 자체만 읽어서는 얻는 게 적고 덧없습니다.
 
글 쓸 때 살필 점들
1. 판단에 대해 증명하고 있는지 확인하세요. 판단을 하고 있는데 혹시 그 판단에 대해 증명을 하고 있지 않은 부분이 있는지 글 전체를 살펴보세요.
) "좋아. 교육은 받아야지 우리나라는 누구에게나 교육의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잖아. 그러나 그 교육이란 게 실상은 교육이 아닌 거지. 교육이란 이름의 세뇌랄까."
이 부분을 보면, 우리 교육을 세뇌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이유를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어떤 판단을 내리면, 꼭 거기에 대해 증명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2. 맺음말이 멋지면 좋습니다. 전체 내용을 정리하면서 깨달은 점을 쓰면 좋겠지요. 그런데 상투적으로 뻔하게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어들은 화려한데 가슴을 울리지 않는 글이 되고 맙니다. 글 맺음 부분을 고민합시다.
 
3. 소설의 줄거리를 정리한 글들이 있는데, 그 내용이 둔하게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군요. 줄거리를 어떻게 전체 글 속에 담아야 자연스러울지 궁리하기 바랍니다.
 
4. 추상적인 표현은 할 수 있는 데까지 구체적인 표현으로 바꾸세요.
 
 
문장쓰기 익히기
 
1. '-것 같다'는 정말 헷갈릴 때만 씁니다. 자기 판단을 분명하게 할 때는 이 말을 쓰지 않아야 글이 좋습니다.
 
2. 우리말은 문장의 끝이 길게 늘어지면 힘이 없어집니다. 말끝을 짧게 치려고 노력하세요.
) 그런데 소설 대화라는 것을 하고 나니 책의 내용이 독후감을 쓰는 것 보다 기억에 더 오래 남을 수 있었던거 같다.
→ 그런데 소설 대화를 하고 나니 책의 내용이 독후감을 쓰는 것보다 기억에 더 오래 남을 수 있었다.
 
3. '..' 또는 '...'은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줄이세요. 그 표시들은 어떤 말이 함축되어 있다는 뜻인데, 글을 쓸 때 함축 표시를 많이 하면 글이 편안하지가 않습니다. 채팅을 할 때야 호흡을 하고 있다는 표시가 되지만, 종이에 인쇄되는 글을 쓸 때는 점점 표시는 되도록 안 쓰는 게 글이 매끄러워집니다.
 
4. 한국어는 '의'를 적게 쓸수록 문장이 다채로워집니다. 글쓰기를 배울 때 '의'를 적게 쓰도록 노력하세요.
 
5. '~에도 불구하고'는 '~했는데도'로 고치면 글이 부드러워지지요.
) 다른 조의 선택에도 불구하고, → 다른 조가 선택했는데도
 
 
 
참고1한국 문학을 읽는다는 것?
우리가 읽은 소설은 모두 ‘한국 문학’입니다. 다음 글을 읽으며 우리가 <노찬성과 에반>, <가리는 손>을 읽으며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지점에 대해 떠올려 봅시다. 그리고 그 내용을 글에 녹여내 주세요 :)
기대, 기대! 당신은 최고야, 당신은 할 수 있어! :D
 
한국 문학 편집자이지만 그만큼 해외 소설을 좋아한다. 출판사 일을 하기 전에는 해외 소설을 훨씬 많이 읽었다. 번역된 소설은 배경도 인물도 사건도 모두 (당연한 이야기지만) 번역된다. 어쩌면 나는 번역이라는 안전그물 안에 숨어서 거리감 있는 이야기만을 즐겨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 작가가 우리말로 쓴 소설을 읽을 때에는 일종의 각오가 필요하다. 이야기에 상처 입을 각오, 몸 한구석에 이야기를 각인시킬 각오, 그것으로 묵은 감각을 변화시킬 각오 같은 것.
《아홉 번째 파도》를 읽으면서 인물들의 고통과 죽음, 사랑의 실 패와 남아 있는 삶에 함께 상처받고 더불어 용기를 얻었다. 척주의 별과 냄새, 바람과 파도 소리 같은 것이 몸안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다. 상화의 목소리가 인화의 몸짓이 자꾸만 떠오르고, 척주의 거리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오래된 약을 삼키던 노인들의 모습이 부지불식 재생된다. 우리 할머니가 한 움큼씩 약을 삼키고는 했었는데, 당신도 무언가에 무서워 고통에서 달아나려 기필코 알약들을 삼켰을까. 그런 생각에 한쪽 가슴이 저린다.
한국 소설을 진지하게 읽는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우리말로 내 곁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있고, 잘 쓴 이야기는 순식간에 사람을 빠져들게 하고, 오랜 시간 그 빠져듦에 머물게 한다. ‘작가의 말’의 첫 문장은 이렇다. “아직도 척주 해변가가 보이는 꿈을 꿉니다.” 이 소설을 읽은 모든 이들이 당분간, 그리고 또 당분간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최은미가 만든 척주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말았다.
 
◎ 초안을 작성해봅시다(완성본은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된 문서로 제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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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 드디어 끝!
고생했어, 아이들아 :) 열심히 읽고 노력에 상응하는 점수를 내는 것으로 노고에 보답할게 :)
 
[부록3] ‘생활글 쓰기’ 진행 자료
◎ 1차시 : ‘글쓰기’가 필요한 때?
 
 
나는 왜 이런 글을 쓰는 걸까?
 
내 삶의 속살이 드러나는 글을 이렇게 길게 써본 적이 없다. 이렇게 순간순간을 스냅사진처럼 찍어두고 싶었던 적도 없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지는 순간을 자주 경험하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부엌일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구경꾼에 가까웠고 서툰 도우미였을 뿐이다. 아내가 부엌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무엇이든 해야 했다. 꽤 긴 시간을 힘들어 했다.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이 전부였다. 물 넣고, 스프 넣고, 라면 넣고, 가끔은 떡국 떡도 조금 넣고. 다 되면 달걀 깨 넣고.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끓여 먹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냄새만 비슷한 것이었다. 하다못해 대파를 씻고 다듬어 쫑쫑 썰어 넣는 일도 해본 적이 없었다.
채소를 씻는다는 게 어떤 일인지 전혀 몰랐다. 나에게 ‘씻는다’는 것은 때수건에 비누칠을 해서, 때수건이 없으면 그냥 비누칠을 해서 문지르다가 물로 잘 헹궈내는 일이었다.
먹을거리를 씻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큰 이파리나 작은 이파리, 시금치 같은 것들, 냉이 같은 것들에 비누를 어떻게 묻혀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그 작고 많은 이파리들을 어떻게 하나하나 문질러주나.
그뿐이 아니었다. 간단한 콩나물국을 끓이더라도 레시피를 보고 따라 해보았지만 다시 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부담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부엌에 들어서면 언제나 천길 벼랑이 앞을 가로막았다. 머릿속은 하얘지고.
안 되겠다. 글로 써두자. 그렇게 페이스북에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척 건조했을 것이다. 메모에 가까운 레시피였을 테니까. 저절로 조금씩 변했다. 내가 왜 이 요리를 하게 되었는지, 요리를 처음 배우고 하면서 느낀 점도 조금씩…… 스냅사진처럼 더했다.
더 큰 변화는 독자들의 반응 때문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인문학을 강의하는 저자가 ‘요리’도 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던 것 같다. 그러다가 예민한 독자들은 구석구석에 스며 있던 슬픈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한 유명 편집자는 이 ‘스냅사진처럼 짧은 글들’을 묶어 책으로 내고 싶다고 했다. 슬픔은 글 주변에서 아지랑이처럼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글을 읽고 그는 ‘가슴에 사무친다’고 했다.
그 말이 참고 있던 내 슬픔의 주머니도 터뜨렸다. 말은 참 힘이 세다. 슬프다고 말하기 전에도 슬펐지만 눈물을 흘리는 날은 드물었다. 사무친다는 말은 바늘이 되어 이미 터질 듯 부풀어 올라 있던 눈물주머니에 와 닿았다. 글을 쓰고 나서 울거나, 한참 울다가 글을 쓰거나, 울면서 쓰기도 했다.
글 중에 「무항생제 대패삼겹살의 기찬 효능」이 아마 가장 긴 꼭지가 아닐까 싶다. 그 이야기는 당일의 일기가 아니라 며칠 뒤에 썼다. 병원에서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던 바로 그때는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 슬픔과 기쁨이 하루에도 몇 번씩 엎치락뒤치락 하던 때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좀더 오랜 세월이 지나면 빛이 바라겠지만.
그러고 나서 나에게 묻게 되었다. 너는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니?
그즈음 우연히 <녹터널 애니멀스>(야행성 동물)라는 영화를 조금 보았다(전편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잘 안 되었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왜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글로 써두려 하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죽어가는 것들을 살려내어 영원히 남겨두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들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생 글을 써왔지만 내 삶의 한 부분을 이렇게 영원히 살려두고 싶었던 적이 없다. 사십 년 동안 함께한 사람과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어쩌면 그렇게 대단한 이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내를 간호하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싶었다. 낯선 부엌일을 시작하면서 배운 것들을 적어두고 싶었다. 그리고 암 투병이라는 끝이 없어 보이는 고통의 가시밭길을 헤쳐 가면서 드물게 찾아오는 짧은 기쁨을 길게 늘이고 싶었다. 아무리 슬픈 이야기라도 글로 쓰면 위로가 되었다.
편집자는 이 기록을 책으로 묶는다면 ‘잡채의 눈물’이라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나는 슬픔이나 눈물보다 기쁨이나 웃음이었으면 좋겠다. ‘무항생제 대패삼겹살의 기찬 효능’도 좋고.
글쓰기가 몸에 배어 있다는 사실이 이번만큼 큰 위로가 되었던 적이 없다. 아내는 이 포스팅을 보지 않기에 두어 개를 읽어준 적이 있다. 역시 유명한 편집자였던 아내는 글에 대해 평가해주었다.
편집자의 눈으로 보아도 글이 좋다. 절제되어 있고 우아하다. 슬픔은 그림자처럼 곳곳에 스며들어 숨어 있지만 독자들에게 들키고 싶어하고, 그 슬픔은 기쁨을 준비하네. 슬픈 이야기지만 독자들이 읽으면 행복할 거야.
낯간지러운 아내의 평가를 굳이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아내는 남들이 보기에 공평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박처럼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내 글에 대해서 ‘좋았지만’ 좋다고 말하기를 꺼렸다(고 했다. 편집자이기 이전에 아내였기 때문에. 물론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매몰차게 단점을 지적하곤 했다. 내가 느끼기에는 매우 그랬다. 나는 무척이나 마음이 상했고 다시는 이 편집자하고는 책을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다.
슬픔과 괴로움, 낯선 것들끼리의 갈등…… 그 모든 것들이 글을 통해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
 
- 강창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머리말
 
 
1. ‘나’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글쓰기를 선택했을까?
 
 
 
 
 
 
 
 
2. 내가 글쓴이의 상황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3. 남기고 싶은 기억이 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 어떤 의미일까?
 
 
 
 
 
 
 
 
 
◎ 2차시 : 다른이의 ‘남기고 싶은 생각’을 들여다봅시다(feat. 국어 선생님)
 
수년 전 박○○ 선생님께서 시민학교를 여실 적에, 여력이 되면 꼭 교육봉사를 하겠다 말씀드렸었다. 그러나 나의 생활 속에 ‘힘이 남는 날’은 허락되질 않았다. 온갖 일들과 핑계로 나는 내 생활 속에 돌고 있었다. 그러기를 몇 년…….
여전히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내던 지난 달,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 일본에 가 계시는 동안 국어교사 자리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어렵게 하신다. 거룩하신 일을 하시는 분의 부탁인지라 감히 거절은 생각도 못하고, 얼결이긴 하나 나에게 석 달 동안의 ‘여력이 되는 그날’이 주어졌다.
 
세 번째 수업을 마친 오늘, 수강생 한 분이 선생님 드시고 가시라며 빵을 주신다. 괜히 마음이 울컥하고, 따뜻해졌다가, 가르친다는 것을 생각하기도 했다가 온갖 심정이 인다. 빵을 건네신 마음이 오롯이 다 느껴지니, 죄송하기까지 하다.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다시 묻고, 소중하게 적는 나이 지긋하신 수강생들의 수업시간이 내겐 봉사가 아니라 이미 은혜가 된 듯하다. ‘배움엔 때가 있다’며 교실의 아이들을 다그치던 내가 오늘은 ‘배움엔 때가 없다’며 이분들을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있다.
 
가르치며 상처받은 마음이, 가르치며 치유될 수 있을 것도 같다. 미천한 나의 ‘가르치는 것’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을밤이 호젓하다.
여전히 여력은 없다 생각한다. 나는 365일이 피곤하므로……. 그러나 누구에게도 여력이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미뤄왔던 일들이 끝도 없이 헤아려진다.
- 2017.11.01. A선생님의 글
1.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을 보며 “넌 왜 그렇게 사니”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언제부터 ‘괜찮은’ 일이 되었을까. 당사자가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이 바라는 방식으로 몸을 다루는 일은, 머리 모양이나 화장 스타일과 같은 취향의 문제가 아닌가.
“건강에 해로우니까”라는 답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갖길 바라는 ‘예쁜 몸’은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 가깝다(많은 여성들이 워너비 몸매를 지칭할 때 ‘기아 팔뚝’, ‘기아 허벅지’와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이 훌륭한 근거가 된다.). 백 번 양보해서, 건강이 염려 된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불손한 방식으로 타인의 삶에 불쑥 끼어들어 ㅉㅉ 거릴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 것은 아님. 허락받지 않았으니까. 내 몸이 크다는 것은 당신이 나를 마음껏 얕잡아보고 혐오해도 된단 의미가 아니다.
 
2. 나는 체격이 큰 여자 아이였다. 수능 직후 체중을 쟀더니 88kg이 나왔다. 키는 160cm.
많은 사람들이 내 몸을 보며 나를 걱정했다. “사람 구실은 하겠니?”라는 말까지 들어봤다. 그것은 정말 ‘걱정’이었을까?
여기서 초점 두어야 할 점은, 내가 누구에게도 조언과 염려를 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걱정을 빙자해서 아픈 말을 던지는 사람들의 눈에서 ‘안도’를 봤다.
버스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살 좀 빼.” 라는 말을 들었고, 옆 학교 남학생들이 우르르 달려와 내 배를 만지고 도망간 일도 있었다. 낄낄 거리면서. “어휴, 사이즈 없어요.”라며 손사레 치는 옷가게 점원들을 한두 번 만난 게 아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무례했어야 했을까? 굳이 ‘어휴’라는 탄식까지 붙여가면서.
사람들은 나를 존중받아선 안 되는 존재인 마냥 대했다. 살찐 사람은 마땅히 그런 대우를 받아야만 하는 것처럼.
 
3.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체중 조절을 시작했다. 지금은 56-7kg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사는 게 편해졌다.
내가 뭘 하든, 무엇을 먹든, 눈치를 보고 이유를 붙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길에서 군것질을 해도, 양껏 밥을 먹어도 “저거저거 그러니까 살이 찌지.” “저렇게 살고 싶을까.” “야, 거울 좀 봐.” 같은 말들을 듣지 않아도 되니까.
기쁘고, 슬프다.
 
4. 감량에 성공한 뒤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었다.
본격적으로 체중이 늘기 시작한 초등학교 2학년 경 이후부턴 가족 외의 사람들에겐 거의 대체로 혐오의 시선만을 받아왔던 것 같다. 친척들을 포함해서. 명절이나 가족행사에서 얼굴을 보면 무조건 체형에 대한 염려(를 가장한 지적)를 들어야만 했는데, 마치 나라는 사람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그것 밖에 없는 것 같았다.
감량 후,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사람들에게 혐오가 아닌 반응을 처음 받아봤다. 그리고 혼란스러웠다. 살찌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대우를 받는구나. 이런 시선을 받고, 이런 말들을 듣는구나. 존중 받는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겉모습에 따라 그렇게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소름끼쳤다.
 
5. 적정 체중을 유지한 것이 거의 15년 정도가 되어간다(쓰고 보니 ‘적정 체중’이란 표현도 웃기다). 하지만 아직도 강박 같은 게 있다. ‘있다’기 보단 ‘강한’ 편이다.
운동을 하고 식이조절을 하는 이유를 ‘건강 챙기려고’라며 설명하긴 하지만(남들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솔직히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 크다. 존중 받지 못하던 시절. 나를 온전한 나 자신으로 보아주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던 시절.
그러면서도. 그렇다면, 내가 스스로를 평가하는 주요한 기준 중 하나도 외모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나를 ‘나’로 바라봐주지 않았던 사람들과 내가 무엇이 다른가. 정말이지 그게 아니었음 좋겠지만. “절대로 아니다, 난 완전히 달라.”라고 단언하기가 힘들다.
 
6. ‘체중’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언젠간 정리해보고 싶었다. 스스로 정리가 잘 되지 않아서. 그러다 읽은 책이라 머리가 아주 혼란스러워졌다. 어쩜, 내 머릿속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 책의 거의 모든 장에 밑줄을 그은 듯.
작가도 생각을 정리하고 싶단 마음에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그 과정과정에서 그가 느낀 감정들이 그대로 전달되어서 신기하고, 슬펐고, 혼란스러웠다. 글쓰기를 통해 저자의 엉켜있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있다는 점이 충분히 느껴졌다. 그래서 좋았다. 공감하고 지지한다. 나도 나의 방식으로 정리될 수 있기를.
 
7. 무엇이 가장 좋았을까, 를 생각해보았더니. 남을 가르치고 바꿔놓겠다는 의도 없이, 스스로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겠단 목적 하나만으로 쓰인 글이라는 점이 좋았던 듯.
이런 주제의 글들은 대체로 “난 지금의 나를 사랑해.” 라거나 “네 멋대로 나를 재단 하지마.” 라는 외침으로 맺음 되는 경우가 많다. 살찐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멸시가 공기처럼 퍼진 세상 속에서 그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왠지 씁쓸하다. 일부러 더 힘을 쥐어짜고 파이팅 하는 느낌이라.
체형 문제를 떠나, 자기 자신을 100%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내가 최고야.” “난 내가 너무 좋아, 사랑스러워!”라고만 여기는 것도 문제 아닌가.). 굳이 애를 써서 “내가 좋아! 이대로가 좋아!”라고 외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체형 문제에 대해선 이게 약간 강박적인 경향이 있다. “난 날 사랑해!”
투쟁의 영역이어서 일까. 그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것을 인정받으려 하는 상황이니까?
‘내 코가 엄청 오똑하고 예쁘진 않지만, 내 몸이니까, 같이 사는 거지 뭐.’ 정도로의 표현이어도 좋을 것 같은데.
자신의 체형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스스로의 시선에 대해 쓴 글 중 가장 자연스럽고 진솔했다. 그래서 “아, 좋다.”고 느꼈다. 어깨에 힘을 주고 “난 나를 사랑해.”라고 외치는 것보다(그렇다고 이게 의미 없다는 게 아니다. 무척이나,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안아주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한, 복잡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에 나는 조금 더 마음이 갔다.
 
아아, 역시 나에겐 정리하기가 넘나 힘든 주제였다. 글 더 못 쓰겠음. 에이, 모르겄다.
여튼 많이들 읽으셨음 좋겠다.
- 2018.05.02. Y선생님의 글
 
 
1. 각 글의 ‘나’들은 어떤 생각들을 남기기 위해(=잊지 않기 위해) 글을 썼을까?
 
 
 
 
 
 
 
 
2. 이 글은 각각 2017년, 2018년에 쓰였다. 2019년의 A, Y선생님은 이 글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글로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3. 2019년의 여러분이 남기고 싶은 경험과 생각은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들을 자유롭게 메모해보자.
 
 
 
 
 
 
 
 
 
 
 
 
 
 
◎ 3차시 : 2019년 5월의 ‘나’를 사로잡고 있는 생각은 무엇?
1. 자꾸 떠올리게 되거나, 집중해서 고민하고 있는 생각들을 써봅시다.
(Y선생님을 사로잡고 있는 생각들: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은 뭘까 / 나는 ‘젊지 않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 내 의지로 즐겁게 산다는 건 뭘까 / 노쇠해지는 부모님과 어떤 경험을 함께 하면 후회가 남지 않을까 / 사고 싶은 건 많은데 돈이 없다!”)
 
 
 
2. ⓵∼⓹ 중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이 기회에 진지하게 탐구해보고 싶은 것을 하나 택한 뒤 다음의 질문에 답해봅시다.
 
2-1.그것을 자주 생각하는 이유는 이 고민/걱정되기 때문이다.
(혹은, 라는 점에서 즐겁기 때문이다.)
(혹은, 라는 것이 나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2-2.그것에 몰두하다 생긴 일,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생각거리인지를 나타낼 수 있는 경험을 써봅시다. 구체적으로!
(Y선생님의 예: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을 생각해보려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친구 선생님들을 지역마다 쫓아다니며 만나고 ‘멋지게 나이드는 사람들의 특성’을 정리해봤다. 한 달 남짓한 겨울 방학 동안 다섯 개의 도시를 돌아다녔고, 여행 경비로 한 달 월급을 다 사용했다. 흑흑.)
 
 
 
 
 
 
 
 
2-3. 그것에 대한 생각을 마인드맵으로 그려봅시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 조각들을 모으고 잘 배치하면 멋진 결과물이 만들어지죠 :)
 
 
 
 
 
 
 
 
 
 
 
 
 
3.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는 생각은,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는가’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냥 하는 생각이 아니라 심지어 ‘사로잡은’ 생각이니까! 마인드맵 그리기를 통해 글에 싣기로 결정한 내용들을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과 연관 지어 정리해봅시다. 그 경험들은 여러분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과 어떻게 연관되나요?
(Y선생님의 사례: “남이 가진 장점들을 부러워하기보다, 내가 가진 특성(잘난 것이든 못난 것이든)을 돌보고 감싸 안아주는 사람이 되기. 부족해보이더라도 내 특성들을 숨기지 않고 내보이는 사람이 되기.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나보다 젊은 사람들을 보며 샘내지 않는 사람이 되기, ‘어린 것=미숙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진심을 담은 말만 하는 사람이 되기. 의례상 하는 뻔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생각을 거치지 않은 말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지 않기”)
 
 
 
 
 
 
 
 
 
 
 
4. 드디어 시작. 초안을 써봅시다. 우리의 모든 잠재력을 동원해, ‘최고로 멋진 나’를 남겨보기. 멋진 글을 쓸수록 그에 걸맞은 멋진 사람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요 :)
 
 
메모
(위치를 이동하면 더 멋져질 법한 내용들, 추가할 생각들을 해당 위치에 써두면 글을 수정할 때에 유용히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
 
 
 
 
 
 
 
 
 
 
 
 
 
 
 
 
 
 
 
 
 
 
 
◎ 4차시 : 글쓰기는 정신력의 최고치를 발휘하게 하는 일 : 세련된 글을 써봅시다
 
호언장담
 
잘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내뱉으며 살아왔다.
오목을 겨루기 전에. 훌라후프 시합을 하기 전에. 아무런 지침 없이 수육을 삶을 때. 원고 청탁을 받을 때. 웹툰 계약서를 쓸 때. 집주인에게 청소와 살림 실력을 어필할 때. 친구들과 뭔가를 도모할 때. 물속에서 오래 숨을 참을 때.
실제로 자신이 있는지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호언장담하면서 상대를 설득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저 잘할 수 있어요. 나 잘할 수 있어. 주문을 걸 듯 그렇게 말하면 진짜로 잘하게 될 것만 같았다.
잘할 수 있다고 해놓고 못해버린 일들은 물론 셀 수 없이 많다. 너무 많아서 대부분 까먹었을 지경이다.
청소년 시절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고백할 때도 비슷하게 말했다. 내가 널 많이 좋아하고 있다고 우리가 사귄다면 정말 좋을 거라고 장담했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무지 좋을 거라고 설득했다. 열아홉 살 때까지는 주로 짝사랑밖에 안 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일은 많았다. 무색하게 거절당한 적도 많았지만 복희한테 안겨서 울고 나면 좀 괜찮아졌다.
젊은 시절 복희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웅이가 그녀를 설득한 방식도 비슷했다.
나랑 계속 만나면 정말 재밌을 거야.
그 말을 듣고 복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자신감이지?
그녀는 궁금해서 웅이를 조금 더 만나보기로 했다. 재밌는 건 정말 좋은 거니까. 하지만 장담했던 것만큼 웅이가 재밌지는 않았다. 도대체 재미란 무엇일까. 청년 웅이는 중년 웅이보다는 웃겼으려나. 무슨 배짱으로 재미를 약속할 수 있었을까. 나는 웅이가 터무니없이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내 남동생도 비슷한 걸 보니 이 기질은 웅이가 물려준 문제적 유전자인 듯했다.
복희는 호언장담을 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복희에게 많은 호언장담을 했다. 독립을 할 때. 모델을 시작할 때. 혼자 외국에 갈 때. 약간 위험한 만남을 할 때. 복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면 나는 말했다.
엄마. 나는 이 일이 나한테 분명 좋을 거라는 걸 알아.
복희는 되물었다.
뭘 그렇게 알아? 어떻게 알아?
나는 일말의 염려 없이 대답했다.
만약에 틀렸다고 해도, 미래의 내가 잘 감당하겠지. 미래의 슬아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마.
나는 언제나 미슬이를 믿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미슬이는 생각보다 무능했다.
미슬이가 현슬이로 다가오는 날에, 그러니까 호언장담이 실패로 돌아가서 상처를 받은 날에 나는 꼭 복희에게 가서 울곤 했다. 복희는, 그럴 줄 알았다. 내가 뭐랬니, 같은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나를 안아주고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그녀를 정서적 베이스 캠프로 두는 한 나는 한참 더 실패해 볼 수도 있을 듯했다.
허나 실패는 역시 쓰라린 일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위험 요소를 잘 피해 가고 싶기도 했다. 스무 살부터는 내가 반한 사람보다 내게 반한 사람이 더 많아졌다. 그래서 나 좋다는 사람 중 가장 좋은 한 명을 골라가며 사귀었다. 한동안 호언장담하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남들의 호기로운 장담과 설득을 경청하는 척하며 거드름을 피웠다.
하지만 스물일곱의 어느 날 나는 어떤 애한테 심하게 반해버렸다. 걔도 나한테 반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반했다고 해도 나만큼 심하게 반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짝사랑인의 심정을 체감했다.
코가 깨진 기분으로 서점에 갔다. 짝사랑인은 가만히 있으면 자신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에 매몰되어버리므로, 재빨리 세상의 다른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의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나의 지혜에 거듭 감탄하며 신중히 책을 골랐다.
막 구매한 좋은 책 한 권을 들고 서점 구석 의자에 앉았다. 좋아하는 소설가의 신작이었다. 호기롭게 읽기 시작했다.
한 쪽도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
5분도 안 돼서 나는 책을 덮었다.
좆됐다고 생각했다.
서점 구석의 의자에 앉아 책을 덮고 눈을 감고 끙끙 앓았다. 걔가 보고 싶어서, 당장 찾아가서 아무 말이나 하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삭신이 쑤셨다. 짝사랑인에게 시간은 매우 이상하게 흐른다. 믿을 수 없이 느리거나 빠르다.
정상적인 독서 생활을 위해서라도 나는 이 사랑을 꼭 성공하고 싶었다.
걔를 만나서 커피를 마시던 날에 내 마음을 말하기로 했다. 좋아한다는 말을 최대한 특징 없는 말투로 말하고 싶었다. 느끼하게 말하면 너무 창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말해야 안 느끼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별수 없이 그저 조… 좋아해… 라고 말하려던 차에 생각해보니 누군가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5년 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지난 5년간 한 명 하고만 연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어도 네 번 이상의 연애를 겪은 느낌이었다. 한 사람이랑도 여러 번의 다른 사랑을 하게 된단 걸 지난 연애에서 처음 배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사정이고 내가 누굴 5년 동안 사랑하다 왔든 5일만 사랑하다 왔든 얘 앞에서는 뭐든지 처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거 아냐고 물었다. 그 외에는 아무 말도 생각이 안 났기 때문이다. 걔는 모른다고 했다. 나는 좋아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자 걔는 거의 못생겨 보일 정도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곧이어 걔는 자기도 좋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으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 상황이 너무 남사스러워서 죽고 싶었고 살고 싶었다.
서로 좋아한다고 말한 이십대 후반들은 이제 무엇을 하면 되는 건지. 주변에는 미끄러지기 좋게 얼어 있는 개울도 없었고 빙판에 갈 그럴싸한 핑계도 없었다. 걔랑 나는 같은 수영장에 다니지도 않았으니까 내가 얼마나 유유히 빠르게 물살을 가르는지 보여줄 일도 없었다. 그보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우리는 시장에서 순대랑 어묵이랑 고로케 등을 사서 내 집으로 갔다. 하지만 순대도 어묵도 고로케도 당최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가 연애 같은 걸 하게 될지 궁금해하느라, 그게 얼마나 좋을지 예상하느라, 나는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걔의 의중은 아직 알 수 없었고 곧이어 걔가 떠나야 할 시간이 믿을 수 없이 빠르게 다가왔다. 외투와 가방을 챙기며 걔는 일어났고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 애가 내 집을 떠나기 전에 나는 뭐라도 말해서 설득하고 싶었다.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주워 말했다.
나한테 사랑받으면 네 인생이 더 윤택해질 거야!
그러자 걔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엄청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는 걸 훗날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힘주어 다시 말하고 있었다. /진짜야…
그 애는 “알았어” 하고 말한 뒤 웃음을 짓고 내 집을 떠났다. 걔는 웃을 때와 안 웃을 때 표정의 차이가 큰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걔가 웃을 때마다 나는 좋아 죽을 것 같았다.
현관문이 닫혔다. / 현관문 안쪽에서 나는 한 번 더 중얼거렸다. 진짠데…
걔 발소리가 멀어지고 나는 시 하나를 떠올렸다. 진은영 시인이 쓴 것이었다. 그 시의 문장 중 몇 줄을 나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 너는 참 좋을 텐데
 
(…)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얼마나! / 너는 좋을 텐데
 
조만간 그 시를 걔한테 조용히 읽어줄 미래가 오기를 희망해보았다. 남의 글을 빌려 말하는 내 호언장담을 듣고 걔는 아마 웃을 테고, 나는 꿋꿋하게 물을 것이다. 정말 좋지 않냐고. 내가 너의 애인이어서 너는 얼마나 좋으냐고.
하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실은, 내가 나라서 싫은 날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2018.03.09.金
《일간이슬아 수필집》 90-95쪽
 
 
 
1. 이 글을 통해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점을 생각해보자. ‘나’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는 사람일까? 윗글의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해보기.
 
 
 
 
 
2. 1번에서 이야기한 특성을 전달하기 위해 글쓴이가 집중적으로 그려낸 경험은 무엇인가?
 
 
 
 
 
 
3. 국어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왜 이 글을 소개해주었을까? 이 글의 매력을 이야기해보자.
 
 
 
 
 
이 글의 특성을, 우리의 초안에 적용한다면? 우왕, 완전 멋져지겠다 :D
[5차시~7차시 : 생활글을 써보자(초안과 수정본)]
[채점기준]
○ 자신의 일상을 바탕으로 유의미한 주제를 이끌어냈는가?
○ 진솔하고 구체적인 언어가 사용되었는가?
○ 첨부한 사진과 본문 내용이 유기적으로 연관되는가?
○ 표현방법 면에서 글쓴이의 개성이 드러나는가?
○ 글의 구성이 안정적인가?
○ 문장은 정확한가?
○ 분량 기준을 만족하는가?
 
 
[메모해봅시다]
▶ 국어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강조한 내용들이 충실하게 반영되었나요? 스스로 체크해보고 미비점을 보완하기.
1) 여러 경험을 나열하기 보다는 하나의 내용을 강렬하게 표현하려 노력했다.
2)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중시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바라는 사람인지 독자가 짐작할 수 있다.
3) ‘나’를 드러내는 방식은 ‘보여주기’이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가 나의 특성을 ‘추측’할 수 있도록 글을 썼다.
4) 감정을 추상적으로 나타내는 문장보다 당시의 상황, 생각, 경험이 구체적으로 표현들이 사용되었다.
5) ‘일상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글이다.
6) 글의 쓰인 내용들이 하나의 지향을 갖고 있다(주제가 있다).
7) 독자가 밑줄을 그을만한 임팩트 있는 문장이 있다.
8) 뻔한 글이 아니다.
9)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난 천재인 것 같다.
 
▶ 수정해야할 점들을 정리해봅시다. 그리고 완성글을 쓸 때에 반영하기! 힘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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