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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정규수업
정규 수업에서의 독서 교육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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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8년에 내가 한 수업 : 발췌독으로 교과서 수업 심폐소생 시키기
조회 644
첨부파일
회원이미지김영희
2019-01-04 14:23:24
       
제가 꼴찌가 아니길!
사랑합니다, 물꼬방님들♡
올해도 행복하게 함께 해요!
 
언제나처럼, 파일로 보시는 게 좋습니당 ^ㅡ^
 
****
2018년에 내가 한 수업
2019년에도 건강할 예정인, 김영희
blog.naver.com/hehe26
 
 
  올해 저의 화두는 ‘교과서 수업’이었습니다. 정규수업의 절반은 수행평가, 나머지 반은 교과서 수업인데 제가 그동안 후자를 너무 등한시 했단 생각을 했어요. ‘교과서로는 이런 수업밖에 할 수가 없어. 기다려봐, 나의 멋짐은 수행평가에서 보여줄게.’라는 태도였달까요. 2018년엔 수행평가보다 교과서 수업에 영혼을 불어넣는 방안을 고민해보았습니다(수행평가로는 소설대화하기(1학기 단편소설/2학기 장편소설), 시영상 만들기, 서평쓰기를 했습니다. 아, 소심하게 페미니즘 제재를 수행평가에 가져와본 것이 나름의 성과입니다!).
 
  책 읽기 수행평가를 할 때에 느낀 뿌듯함과 충만감을 교과서 수업에서도 느껴보자는 게 목표였어요. 학생들과 교과서에 실린 글을 읽으며 ‘의미 있는’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지필평가 치르고 나면 한 번도 떠올려볼 것 같지 않은 지식 말고요.
  그래서 각 제재에 어울리는(생각을 깊이 이끌어갈 수 있도록 자극하는) 글들을 찾아 단원 처음과 끝에 배치했습니다. 교과서 수업이지만 나름 기승전결을 갖추게 하고 싶었어요.엄밀히 말하면 단행본을 읽은 것이 아니라 ‘한 학기 한 권 읽기’라고 볼 순 없습니다. 하지만 전 좋았어요!(막무가내)
 
  교사로서 제가 해야하는 일을 생각해보곤 합니다. 자주는 아니고요, 이렇게 물꼬방 겨울 모임 앞두고 숙제할 때 정도? 크크.
  사람마다 답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는 질문이에요. 저의 기질과 성향에선, ‘문을 열어주는 사람, 소개해주는 사람’을 소임으로 삼는 것이 어울린단 생각을 합니다. 제가 읽고 짜릿함을 느꼈던 글, 혹은 대화와 소통의 방식, 인간과 인간이 만나 관계를 맺는 법 같은 것들을 ‘소개’해주고 싶어요. ‘이런 것도 있어, 생각도 못해봤지’ 라며 제안하는 사람, 제시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깊이 있는 가르침을 주진 못하더라도, 내가 발 딛고 사는 일상이 세계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안내해주고 싶었어요. 이런 걸 두고 온 힘을 다해 고민하고 그걸 다시 아름다운 글로 정리해내는 사람이 있어, 라는 것도 보여주고.
 
  그런 면에서 이것저것을 다 다뤄볼 수 있는 발췌독은 제 기질에 잘 맞습니다. 전 좀, 가볍고 얕은 사람인 것 같아요. 예전엔 이 점이 조금 부끄러웠지만(한없이 깊은 물꼬방 샘들과 비교하며 자주 자괴감을 느끼곤 했죠. 이 사람들은, 뭐, 다들 너무 깊어. 따라가다 보면 아르헨티나까지 뚫고 나갈 것 같아.) 인정하기로 했어요. 난 이 지점에 특화되어 있다. 더 얕게 가자, 대신 더 넓게 가보자.
 
***
  서론이 길었습니다. 그래서 2018년 수업에서는 다양한 글을 맛보게 하는 일에 초점을 두었어요.
  교과서에 실려 있으니까 그냥 읽고 무색무취한 지식들을 그냥 학습하는 게 아니라, 이 문장들을 인간의 사고/삶과 연결 지어 이해하게 하려 했습니다. 이 글이 대체 왜 왜 멋지다는 건지(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많이 공부하고 고민한 사람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접하며 생각해보게 했고요.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은 시각으로 보기를 연습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연습까지는 아니고, 시도?
 
  책을 읽고 사고하는 바의 깊이는 단행본에 비할 바 못되겠지만, 교사의 안내를 받으며 ‘모든’ 학생이 철학가나 문학평론가의 글을 읽고 생각을 해보고 이야기 나눠보는 경험을 하는 일도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만나는 대다수의 친구들은 철학책이나 평론집을 끝까지 읽어내지 못하는 아이들이거든요.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대상도서로 전해졌을 때에 10%의 학생들만 읽고 이해할 법한 책들에서 찾은 글들을 함께 읽었습니다. 모든 학생이 같은 글을 읽으면, 학생들이 애 먹는 지점들을 교사가 좀더 친절하게 짚어가며 안내할 수 있게 되어 좋아요. 그 점이 좋아서 발췌독을 애정합니다. 약간, 고급문화의 대중문화화 같은 느낌? 모든 사람이 뮤지컬을 보러 갈 수 없으니, ‘라라랜드’ 같은 영화도 만들어져야죠.
 
  여튼, 올 한해 학생들과 읽은 책(=발췌당한 책)들입니다. 학습지에 실린 내용 일부분을 다시 발췌합니다. 교사 취향을 팍팍 반영했죠. 제가 즐거워야 애들도 즐거울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당당).
 
***
 소설 대화하기 전 안내자료 : 무라카미 하루키, <벽과 알> 소설의 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를 요약하자면 단 한가지입니다. 개인이 지닌 영혼의 존엄을 부각시키고 거기에 빛을 비추기 위함입니다. 우리 영혼이 시스템에 얽매여 멸시당하지 않도록 늘 빛을 비추고 경종을 울리자,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역할입니다.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쓰고, 사랑의 이야기를 쓰고, 사람을 울리고 두려움에 떨게 하고 웃게 만들어 개개인의 영혼이 더 할 나위 없는 소중함을 명확히 밝혀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소설가의 일입니다.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진지하게 허구를 만들어나갑니다.
 
 
<종탑 아래에서(윤흥길)> 수업 후 엮어 읽기 :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나와 멀리 떨어진 존재의 고통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
10년 만에 묶는다. 네 번째 시집 이후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왔다. 시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대신 시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지 않고 시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라고 묻곤 했다. 시를 나 혹은 너라고 바꿔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그러다보니 지금 여기 내가 맨 앞이었다.천지간 모두가 저마다 맨 앞이었다. 맨 앞이란 자각은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고 감성에서 우러나왔을 것이다. 존경하는 친구가 말했듯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관(世界觀:보다)이 아니고 세계감(世界感:느끼다, 마음을 움직이다)이다.세계와 나를 온전하게 느끼는 감성의 회복이 긴급한 과제다. 우리는 하나의 관점이기 이전에 무수한 감점(感點)이다.
세계감과 세계감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새로운 세계관이 생겨날 것이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놀랍도록 새로운 의미를 갖게될 것이다. 이렇게 모아 놓은 조금은 낯선 낯익은 이야기가, 오래된 기도 같은 이야기가 다른 삶,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사람들과 손을 잡았으면 한다.
 
 
<향수(정지용)> 수업 전 엮어 읽기 : 황현산, 《우물에서 하늘보기》 ‘시’가 필요한 이유, 무용한 것의 가치
예술은 자주 그 무용한 사치와 그 과격한 사보타주*방해 행위로 현실의 억압을 비껴간다. 억압이 없는 삶은 물론 없다. 인간관계와 사회제도를 말하기 전에, 지극히 섬세한 물질이지만 여전히 물질인 우리의 육체가 우선 물질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 고아원의 불행한 아이는 외국의 자선가가 한 해에 한 번 보내준 내용 없이 아름다운 카드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생명을 부지해준 것은 그의 선물을 가로채기도 했을 고아원 관리자들이 인색하게나마 제공해주던 밥과 옷과 잠자리였다. 그러나 억압의 저 너머를 꿈꾸지 않는 삶은 없다. 또 다른 삶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물질이 이 까다로운 생명을 왜 얻어야 했으며, 그 생명에 마음과 정신이 왜 깃들었겠는가.예술가의, 특히 시인의 공들인 작업은 저 보이지 않는 삶을 이 보이는 삶 속으로 끌어당긴다. 그의 사치는 저 세상에서 살게 될 삶의 맛보기다. 그 괴팍하고 처절한 작업을 무용하게 만드는 것은 이 분주한 달음박질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내가 왜 사는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묻기를 두려워하는 지쳐빠진 마음이다.
 
<향수(정지용)> 수업 후 엮어 읽기 : 알랭 드 보통, 《불안》 ‘나’의 감각으로 지각한 세상을 ‘나’의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의 의미
18세기와 19세기의 위대한 정치 혁명과 소비자 혁명은 인류의 물질적 운명을 크게 개선시키는 동시에 심리적 고뇌도 안겨 주었다. 그 중심에 자리 잡은 특별하고 새로운 이상, 즉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며 누구나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사실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에는 그 반대되는 가정이 영향력을 행사했다. 불평등과 낮은 기대 수준이 정상적이고 지혜로운 것이었다.극소수만이 부와 충족을 갈망했다. 다수는 자신이 착취를 당하며 체념 속에 살아갈 운명임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어떤 사람들은 날 때부터 노예이며, 날 때부터 노예인 사람들에게는 노예제도가 편리하고 정당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기원전 350)에서 그렇게 말했으며, 그리스와 로마의 거의 모든 사상가와 지도자가 이런 입장을 지지했다. 고대 세계에서 노예와 노동계급은 보통 이성이 없는 피조물로 간주했으며, 그 결과 가축이 밭을 가는 것이 당연하듯이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어울린다고 여겼다. 당시의 엘리트가 그들에게도 권리와 갈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망치와 낫의 정신 상태나 행복 수준을 연구하겠다는 말만큼이나 터무니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향수(정지용)> 수업 후 엮어 읽기 : 김중혁, 《무엇이든 쓰게 된다》 ‘나’의 감각으로 지각한 세상을 ‘나’의 문장으로 표현하기 실습
 
 
모나미의 네임펜대놓고 이름을 쓰라고 만든 펜이다. 제한하니까 오히려 다른 것도 하고 싶어지잖아. 네임펜으로 그림 그리기, 네임펜으로 벽에 낙서하기, 네임펜으로 약도 그리기……. 그렇지만 책에 사인할 때 가장 많이 쓴다. 굵기에 따라 세 종류가 있는데, 중간 글씨용이 가장 마음에 든다. 새 책이 출간되면 문구점에 들러서 네임펜 한 다스를 산다. 남을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사치를 부려본다. 집에 쓰다 만 네임펜이 한가득이다.
 
 
아트라인의 드로잉 시스템 0.2얇아서 좋다. 얇은 펜이 종이 위를 지나갈 때의 서걱거림, 까끌까끌한 촉감을 좋아한다. 얇은 펜으로 그림을 그리면 어쩐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선이 얇아지므로 섬세하게 그리게 된다. 섬세하게 그리려면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선이 얇아질수록 눈썰미가 좋아진다.
 
 
 
<가시리(미상)>, <서경별곡(미상)>, <진달래꽃(김소월)> 수업 전 엮어 읽기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사랑이란?
그 이후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위 논의를 보완하고 싶어졌다. ‘사랑의 관계 속으로 진입할 때 나에게 생기는 변화는 어떤 것일까? 흔히 다시 태어난다고들 하는데, 새로 태어난 나는 이전의 나와 어떻게 다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완전함온전함을 분별할 필요가 있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말할 사람도 있겠으나, 영어의 ‘perfect’(완벽)와 ‘complete’(완성) 사이에도 어감의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말하기로 하자.) 사랑의 관계를 형성한다고 해서 내 결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결여가 없다는 의미에서의 ‘완전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대방을 통해서 내 결여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는 있다. 내 결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 결여가 더는 고통이 아닌 생, 그런 생을 살 수 있게 된 사람을 ‘온전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사랑은 나를 완전하게만들지는 못해도 온전하게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 사랑 속에 있는 것이다. ‘홀로 있을 때가 아니라 그와 함께 있을 때, 나는 더 온전해진다.’
 
 
<가시리(미상)>, <서경별곡(미상)>, <진달래꽃(김소월)> 수업 후 엮어 읽기 :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이별의 자세
속았다. 맥주에 유통기한이 있는 줄 몰랐다. 복통과 설사에 시달리면서도 그저 지난밤의 과음을 자책했을 뿐 술 자체에 문제가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잊지 말자, 맥주의 유통기한은 1년이다.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대략 18~30개월이 된다. 그러나 그런 거 생각하다 보면 사랑 못한다. 잊자, 18개월이건 30개월이건. 그렇다면 슬픔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있는 것 같다. 슬퍼하는 와중에는 그 슬픔이 천년만년 갈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슬픔의 유통기한이라는 거 의외로 길지 않다.슬픔의 안쪽에 있는 사람은 슬픔밖에 못 보지만, 슬픔의 바깥에서 그것을 관찰하는 시인의 눈에는 슬픔의 유통기한이 보인다.[중략]
최정례의 네 번 째 시집 <레바논 감정>(문학과지성사·2006)에서 골랐다. 너는 칼자루를 쥐고 있고, 나는 목을 들이밀고 있다. 이것이 이별의 순간이라면 너는 ‘연인’일 것이고, 사별의 순간이라면 너는 ‘신’일 것이다. 그 이별의 장소에서 나는 문득 칸나꽃을 본다. 나는 지고(敗) 있고 너는 지고(落) 있구나. 너도 ‘너 자신임’을 이기기 위해 싸우고 있구나. “칸나꽃이 칸나꽃임을 이기기 위해 칸나꽃으로 지고 있다.” 이 구절도 멋지지만, 시의 포인트는 그 다음에 있다. 시인은“슬퍼하자 실컷”이라고 말한다. 왜? 내일의 슬픔은 오늘의 슬픔보다 옅을 것이고, 모레의 슬픔은 내일의 슬픔보다 옅을 테니까. 그렇다면 슬픔의 유통기한은 3일인가. 아무튼 이것은 슬픔의 넷째 날을 알고 있는 자의 노래다.
 
<춘향전(미상)> 수업 전 엮어 읽기 : 콜슨 화이트 헤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나’의 삶을 ‘나’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
빅 앤서니의 심판이 왜 미뤄지는지는 테런스가 주문한 새 물건들이 설명해주었다. 목수들이 밤새도록 고생을 해서 사람을 묶어놓는 차꼬를 완성했다. 야심차게 조악한 조각까지 되어 있었다. 미노타우로스, 가슴이 큰 인어들, 숲속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여러 상상 속 존재들. 차꼬는 앞마당의 빽빽한 잔디밭에 설치되었다. 작업반장 둘이 빅 앤서니를 단단히 잡아맸고, 첫째 날 그는 거기 붙들려 있었다.
둘째 날 손님들 한 무리가 마차를 타고 도착했는데, 애틀랜타와 서배너에서 온 지체 높으신 양반들이었다. 테런스가 오가는 길에 만난 멋진 신사와 숙녀들은 물론 미국의 풍경을 취재하러 런던에서 온 신문기자까지. 그들은 잔디밭에 차려진 식탁에 앉아 앨리스가 끓인 거북 수프와 양고기를 맛있게 먹었고, 요리사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칭찬을 늘어놓았다. 빅 앤서니는 그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채찍질을 당했고, 그들은 천천히 먹었다. 신문기자는 음식을 먹으면서 종이 위에 뭔가를 휘갈겨 썼다. 디저트가 나오고 흥이 오른 손님들이 모기에 뜯기지 않으려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빅 앤서니의 처벌은 계속되었다.
셋째 날, 점심시간이 끝난 직후 일꾼들이 들판에서 불려 왔고, 세탁부와 요리사와 마구간 일손들이 작업을 중단했고, 집 안에서 일하는 노예들은 집안일에서 잠시 손을 놨다. 그들은 잔디밭에 모였다. 랜들가에 온 손님들은 사람들이 빅 앤서니에게 기름을 바르고 불에 굽는 동안 향신료 넣은 럼주를 홀짝였다. 목격자들은 첫째 날 그의 남근이 잘려 안에 넣고 꿰매졌기 때문에 그의 비명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장치는 연기를 피워 올리며 까맣게 타들어 갔고, 나무에 새긴 형체들은 살아 있는 듯 얽혀 들었다.
 
 
<춘향전(미상)> 수업 후 엮어 읽기 : 정여울, <건강한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 진정한 행복은?
뭔가 어려운 일을 결정할 때 보면 그 사람이 상징계에 있는지 상상계에 있는지 알 수 있는데,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될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의심해봐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오십이 넘어도 아직 상상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상황에 치닫지 않기 위해서 진정으로 이 통과의례를 견뎌내야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을 지금 가장 힘들게 하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통과의례의 눈부신 기회가 될 수 있다. 그 장애물을 통과하는 과정은 엄청나게 고통스럽지만 일단 그 장애물을 통과하고 나면 엄청난 자유의 세계가 펼쳐진다.
상징계의 요건이 단지 ‘성장의 고통’만은 아니다. 상징계의 고통을 통과해냈을 때의 성장과 희열이 훨씬 크다. 그 고통을 통과하고 나면 상상계에서는 결코 맛보지 못할 엄청난 자유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 자유는 상상계에서 꿈꾸는 그런 상상 속 행복이 아니다.“Happily ever after.” 이런 게 상상계의 가짜 행복이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할 때, 우리는 의심해야 한다. 백설공주가 왕자랑 결혼하면 아무 문제 없을까. 첫날부터 싸우지 않았을까. “왜 자고 있는 사람에게 키스를 하냐. 그건 나의 성적 자율권을 박탈한 것이다.” 이렇게 싸울 수도 있지 않은가. “Happily ever after”는 불가능한 꿈의 세계다. 동화 속에 나오는 행복이 상상계고, 우리가 꿈꾸는 그런 행복은 상상계처럼 단순하지 않다.
 
 
<춘향전(미상)> 수업 후 엮어 읽기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비판과 조롱(여혐/남혐 현상과 연결지어 수업을 하려 했는데, 생기부에 치이느라 하지 못했어요. 흐규규.)
비판은 언제나 가능하다. 풍자는 특정한 때 가능하다. 그러나 조롱은 언제나 불가능하다. 타인을 조롱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저급한 쾌감이며 거기에 굴복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가장 저열한 조재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
 
 
***
  고1 학생들이이 혼자 읽고 이해하기에는 난이도가 높은 글들이었습니다.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리고 그날 생각한 것들을 오래 남기기 위해 활용한 장치는 이러합니다.
 
1. 어려운 글일수록 교사가 직접 낭독.
  무게가 있는 글은 직접 낭독을 해주는 편. “눈으로 읽어.”라고 말을 할 때보다 좀더 많은 학생들이 글을 접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과 기대가 있다. 읽진 않더라도 들리긴 할 테니, 그러면 뭔가가 더 남지 않을까, 하는. 차분히 글 읽는 소리가 공간을 채우는 그 분위기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묵독과 낭독 중에 뭐가 더 좋은지는 일부러 묻지 않고 있다. “별론데요”라는 말을 들어도 어차피 계속 할 거라서. 난 이게 조크든요. 크크. 이왕 하는 거, 그냥, 좋겠지 하면서 기분 좋게 하고 싶다.
  같은 내용도 (교사의) 입말로 들으면 적절한 부분에서 끊어읽기가 되니 학생들이 좀더 내용을 잘 이해한다. 읽기를 어려워하는 친구들에게 글 읽기를 시켜보면, 끊어읽기 없이 로봇처럼 ‘글자를 읽는’ 경우가 많다. 두두두두. 진짜 ‘글자만 읽기’. 내용이 전환되는 지점에서 적절히 휴지를 주는 일은, 어느 정도 읽기 실력이 쌓였을 때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읽기 활동에 익숙한 애들은 이걸 잘하는데, 아닌 경우엔 힘들어한다. ‘읽기’와 ‘이해’가 나뉘는 지점이 이 부분인 듯. 그래서 어려운 글일수록 내가 직접 읽어주는 편이다. 익숙치 않은 단어가 많이 나오거나 문장의 길이가 길 때.
  핸드폰 녹음기에 낭독한 내용을 녹음해두면(수업 전날 밤 침대에 앉아서 읽는 것, 추천! 뿌듯하고 촉촉한 맘으로 잠들 수 있음.) 교실에 틀어두고, 난 돌아다니며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깨울 수 있다. 사실 이 스킬까지 사용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교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엄청 긴 고전소설의 본문을 읽을 땐 아이들이 막 픽픽 쓰러지므로, 그 때 녹음기를 사용한다.
 
 
2. 비주얼 씽킹으로 내용 정리
  모든 학생이 내용 이해를 한 뒤 토의를 해야 공허한 이야기가 오가지 않는다. 제재 읽기가 모두 끝나면 비주얼 씽킹으로 본문의 내용을 정리하게 한다.
  이해 정도를 확인하고 적절한 지점에서의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 어떤 글을 읽더라도 내용 이해를 무리 없이 해내는 학생들이라면 굳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교사의 도움을 얻었을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글일 경우(글자 읽기 이상의 의미 읽기) ‘최대한 많은 학생이 제재를 이해한 상태’를 만들어두는 일이 수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래야 이후에 토의하고 글쓰고 하면서 우리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다(은근히 교과서 밖에서 가져온 지문은 학생들이 곧잘 이해한다. 왜일까? 신형철의 글도, 알랭 드 보통의 글도, 황현산의 글도. 교사가 글을 읽으며 설명을 조금만 덧붙여 주면 애들이 이해를 한다. 신기방기. 비주얼 씽킹 스킬은 주로 교과서 지문을 읽을 때에 적용하곤 했다. 지루한(…) 글 읽을 때 좋다.)
 
 
3. 반드시 모둠 토의 연계. 토의 주제로는 주요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는 질문, 관련 경험을 묻는 질문을 내어주기
  ‘멋진 글을 모든 학생들과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 반드시 모둠 토의로 대화를 나누게 해야 한다. 그리고 토의 주제에는 글의 핵심 문장의 의미를 생각하는 질문을 포함해야 함. 그래야 학생들이 해당 글의 ‘진짜 멋짐’을 경험하고 감탄하게 된다.
  질문을 잘못 만들면 수업 시간 내내 변죽만 두드리다 끝이 난다. 모둠의 학생들이 모두 ‘우와-’하고 감탄하는 장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대화를 나누며 지적 쾌감을 느끼는 경험을 자주 하게 하는 것이 모둠 토의 수업을 꾸준히 이끌어가는 유일한 힘이다.
  ‘관련된 경험 말해보기’도 반드시 질문거리로 포함해야 함. 그렇지 않으면 대화의 내용이 공허해진다. 있어 보이는 말들만 주고받다 끝나버린다.
  교사의 취향과 기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해하기가 까다로운 글일수록 토의 주제를 교사가 직접 정해주는 것이 (나는) 좋았다. 교과서 수업은 수행평가와 달리 한두 시간 내에 읽기와 토의가 압축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때에 토의 주제를 학생들에게 만들게 하면 그걸 만들다 아이들의 집중력이 모두 소진돼 버린다.
  학습지에 실리는 질문은 복잡하지 않다. ‘인상 깊은 내용과 그 이유’-‘주요 문장의 의미(2개 정도)’-‘관련된 경험 말하기’ 정도의 흐름으로만 제시.
 
4. ‘경험’을 발표할 때엔 발언자가 직접 발표
  외부 지문을 읽는 이유는, 결국 그 내용을 자신의 삶과 연관 짓게 하는 경험을(일상적인 생각을 할 때보다 좀더 높은 차원에서) 하게 하기 위함이다. 모둠 대화가 끝난 뒤 대표 발표를 할 때에는 교사가 제시한 질문 중 답변이 멋지게 나온 것 하나를 선택해서 말하게 했는데(대표 발표가 필요할까, 의 문제를 두고 생각을 좀 해보았는데. 대표 발표를 하는 것이 (나는) 필요하다고 본다. 오간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며 중요도 판단을 해볼 수도 있고, 발표 내용을 다시 정리하며 내용을 명확히 요약하여 표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관련 경험을 이야기하는 팀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흥미롭고 재미있으니까. 이럴 때에는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경험의 주인공이 직접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 좋다. 발표자가 발표를 하면 생동감이 사라진다. 기계적으로 발표를 하면 발표의 맛이 죽는다.
  경험 발표를 할 때에는 “제일 멋진 이야기 한 사람을 손가력으로 찍어주자!”라고 한 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친구가 일어나 본인의 이야기를 하면 된다.
 
5. 토의 후 그날 생각한 것들을 정리해서 글로 쓰는 시간 갖기
  애써 멋진 생각을 했는데, 그게 다 휘발되어 날아가면 아까우니까. 모든 수업 시간에는 그날 생각한 것들을 기록하는 시간을 두었다. 이때에 주옥같은 글들이 많이 나왔다! (예시는 김영희 블로그에서 확인하세영! 블로그 홍보를 하며 급히 사라진다 ㅋㅋ 생기부 쓰러 가야됏!)
 
 회원이미지jimjung23  2019-04-22 16:28   답글    
수업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느껴지네요. 선생님.
수업에서 배운 내용과 관련하여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시하시는 것이
대단하고 읽어보니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잘 활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원이미지김승진  2020-02-14 23:14   답글    
고등학교 교과서 수업도 궁금했는데, 김영희 선생님 덕분에 많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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