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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연수 원고 : 학기에 지필시험 1회만 보고, 책 한 권 읽히는 방법(송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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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이미지강상준
2019-07-24 14: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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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에 지필시험 1회만 보고, 책 한 권 읽히는 방법
 
송승훈 ∥ 경기 광동고 wintertree91@naver.com
 
1. 책 읽힐 시간이 없다면, 지필시험 1회 보기
“국영수는 주요 과목이니, 하던 대로 하시면 좋겠어요.”
오래 전에 지필시험을 학기에 한 번 보겠다고 했을 때 들은 말이다. 중고등학교에서는 관습적으로 지필시험을 학기에 두 번 보아왔는데,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지침은 오래 전에 지침을 다 바뀌었다. 오래 전부터 지필시험은 학기에 한 번만 봐도 되었다.
지금 경기도 중학교에는 1차 지필시험 기간이 하루인 학교들이 꽤 있다. 시험 기간이 하루인 것은 1차 지필시험, 그러니까 옛날 표현으로 중간고사를 보는 과목이 한 과목뿐이어서이다. 지필시험을 학기에 한 번 볼지 두 번 볼지는 교과 교사의 재량이기에, 두 번 보고 싶은 교사가 그 학교에 한 분이 있는 것이다. 경기도에는 혁신학교가 500개가 넘고, 그 역사가 10년도 더 되었다. 게다가 중학교에는 지필시험이 없는 자유학기제가 있어서, 지필시험에서 벗어나는 데 심리적 저항이 적다. 지필시험이 한 번이면, 어떻게 성적을 내냐고? 대학처럼 책 읽고 글 쓰고 발표하고 구술평가도 하면서 그 과정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중학교에서 수업과 평가 혁신에 성공한 선생님들이 몇 년 전에 고등학교로 옮겨오면서, ‘고등학교에서도 개혁을 해봐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그 첫 해에 부딪친 벽이 지필시험을 과거에 하던 대로 학기에 두 번 보라는 말이었다. 남녀평등이 법에 명시되었지만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렸듯, 평가 혁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지필시험을 학기에 두 번 보는 것과 한 번 보는 건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한 학기는 달력을 세어보면 15주가 나온다. 그런데 그 15주를 모두 수업을 하지 않는다. 1차 지필시험과 2차 지필시험이 있어서, 13주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13주를 또 그대로 다 수업을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는 시험 전주에 자습을 하는 전통이 있어서, 두 번 보는 지필시험 앞에 있는 한 주씩이 빠져서, 11주가 된다. 여기에다가 연휴와 학교행사가 몰려서 1주가 더 빠진다. 그리고 지필시험이 끝나면 답 맞추고 시험점수 확인하느라 한두 시간이 또 없어진다. 실제로 10주만 수업하게 되고, 그러니까 5주를 공부하고 한 번 시험을 보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학교에서 시험 3주 쯤 전에 시험 문제를 내라는 메신저가 오면,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있다. “뭘 벌써 또 시험을 내래? 가르친 것도 없구만. 빨리 진도 나가야겠어.”
학기에 두 번 지필시험을 보면, 교사는 계속 달리게 된다. 무엇인가를 계속 가르쳐야 한다는 압박에 자기도 모르게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눌려서, 무엇엔가 쫓기듯 멈추지 않고 강의를 하게 되기 쉽다. 경기도에서 혁신학교를 십년 하면서 여러 수업과 평가 혁신의 노력을 해본 결과 알았다. “지필시험을 두 번 보고 수업과 평가 혁신을 하려면 교사가 훌륭해져야 한다. 그런데 지필시험을 한 번만 보면, 보통 교사도 수업과 평가가 저절로 혁신이 된다.”
지필시험을 학기에 한 번 보면, 교사에게는 1.5-2주가 더 생긴다. 그 2주의 시간이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학기에 10주를 수업하는데 1.5-2주의 시간이 더 생기는 것은 15-20%의 시간이 더 생기는 것이기에 결코 적지 않다. 그리고 중간에 지필시험을 한 번 보느라 끊기는 흐름이 없어서, 한 학기 동안 긴 호흡으로 수업이 가능하다. 그래서 지필시험을 학기에 한 번만 보면, 웬만한 교사라면 저절로 수업과 평가가 바뀌게 된다. 그 교사가 대학에서 배운 대로, 국가교육과정에 나온 대로 토론하고 책 읽고 글 쓰고 발표하는 활동을 수업 중에 하면서 그 과정을 평가할 수 있는 시간 여유를 얻게 된다.
“지필시험을 한 번 보면, 그때 결석하면 어떻게 하나요?” 제일 먼저 듣는 걱정인데, 하나도 어렵지 않다. 지필시험을 두 번 볼 때 한 번 결석하면, 다른 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점수를 환산해서 준다. 지필시험에서 1차만 보고 2차를 안 봤다고 하면, 1차 지필시험의 성적이 전체 학생 중에서 몇 등인지를 살펴서 그 등수에 해당하는 2차 지필시험 학생의 점수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결석을 했으니까, 질병 결석이면 0.8을 곱해서 20% 할인을 해준다. 타당한 이유 없이 결석하면 그 점수에 0.5를 곱해서 50%만 인정을 한다. 집안에 상이 났거나 천재지변이나 전염병으로 시험을 못 볼 때만 인정결석으로 해서 기준 점수를 모두 인정한다. 학교에 따라 차이가 조금 있지만, 현재 제도가 대략 이렇다.
지필시험을 한 번만 볼 때는 1차 지필점수 대신에 그 학생이 수행평가에서 얻는 점수가 몇 등인지를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시험을 안 보면 20% 이상 점수를 깎이기에, 의도적으로 시험을 안 보는 꾀를 부릴 수가 없다. 그러니 수행평가를 잘 보았다고 해서 지필시험을 안 보는 학생이 나오지는 않는다.
“한 번 본 지필시험을 실패하면, 재기할 수 없잖아요. 시험에 대한 학생 부담이 커지지 않나요?” 성적을 어떻게 내는지를 해결하면, 그 다음에는 학생 부담에 대한 걱정이 나온다. 한 번 해보면 별일이 아닌데, 안 하던 일을 하려면 원래 걱정이 되는 법이다. 지필시험을 학기에 한 번 보려면, 시도교육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수행평가가 60%가 넘어야 한다. 그러면 한 번에 10%씩 여섯 번 정도 평가를 하게 된다. 여섯 번 평가를 하기에, 지필시험을 한 번 못 봐도 학생은 열심히 하면 자기 성적을 회복할 기회가 더 많다.
주사위를 세 번 던져서 모두 다 3이 나올 수가 있다. 그런데 주사위를 던지는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오는 숫자는 확률에 귀결된다. 평가 횟수가 여섯 번이 되면, 열심히 한 학생은 점수가 잘 나오게 된다. 지필시험이든 수행평가든 열심히 한 학생이 점수가 나오지, 공부 안 한 학생이 점수가 나올 리는 없다. 수행평가 비율이 낮을 때는 한두 번 채점을 한다. 그러면 어쩌다 학생이 한 번 실수를 하거나 교사가 어쩌다 점수를 한 번 깎으면 그 점수를 회복하기 어렵다. 그런데 수행평가 채점을 횟수가 많아지면, 학생은 성적에 대한 불만이 사라진다. 열심히 한 학생이 좋은 점수를 얻고, 한 번 실수해도 다음번에 잘하면 된다는 것을 학생이 잘 알기 때문이다. “수행평가 비율이 60% 이상이 되면, 성적 민원이 거의 없어집니다.” 실제 해본 선생님들이 다 같이 하는 말이다.
주의할 점은 수행평가 비율이 높아졌다고 너무 여러 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굵직한 활동을 하나 하면서, 그 과정을 여러 측면에서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과 교사 부담이 적정하게 된다.
우리 학교는 1-2학년 모두 국어과에서 지필시험을 한 번만 본다. 수행평가는 60-70%이다. 그 덕분에 수업시간에 책 읽고 이야기 나누고 글 쓰는 수업을 할 시간을 얻어 여유롭게 한다. 교과서 수업 진도를 나가느라, 수업시간에 책 읽을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면 학기에 지필시험을 한 번만 보는 시도를 해보시기 바란다. 경기도교육청과 충청북도교육청에서는 지필 1회 실시를 권장한다는 공문이 따로 나갔을 정도이고, 앞으로 지필 1회 정책은 점점 더 확산이 되리라고 본다.
대학에 갈 때 수능 위주 전형으로 가는 학생들은 30% 정도이다. 70%는 학교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잘했는가를 살피는 학생부 교과와 학생부 종합 전형이다. 학생부 전형에서는 학생생활기록부의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가 중요하다. 과거에는 숫자로 나온 성적만 따졌다면, 이제는 각 과목 교사들이 학생에 대해 기록한 서술형 문장이 숫자로 나온 성적과 함께 고려된다. 이 서술형 기록이 내실 있게 되려면, 무엇보다 그 학교에서 다양한 활동을 교과수업에서 해야만 한다. 지필을 학기에 한 번만 보고 여러 활동을 하는 쪽이, 학생의 대학 진학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겠다.
국가교육과정에 나온 대로 수업과 평가를 하기 위해, 수업시간에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데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 지필시험을 학기에 한 번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정리할 수 있다.
과목 특성에 따라, 그리고 교사의 준비 상황에 따라 지필시험을 한 번 보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준비된 교사 또는 자기 교과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는 교사라면 지필시험을 학기에 한 번 보기 바란다. 그러면 매우 여유 있게 수업을 할 수가 있고, 학생도 더 다양한 역량을 기를 수 있다.
 
2. 윤리적 독서에 대한 고민
학생들에게 책을 읽은 후 자유롭게 서평을 써보라고 하면, 이래도 되나 싶은 때가 종종 있다. 이야기를 해보면 이렇다. 󰡔문학󰡕 교과서에 나온 김원일의 「어둠의 홈」을 읽고 학생들이 토론을 했다. 이 소설은 초등학생인 어린 아이의 눈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희생당한 아버지를 그려낸 작품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유학까지 갔다 온 인텔리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번듯한 데 취직하지 않는다. 야학을 열어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고, 돈이 안 되는 일을 한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자,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다가 아버지는 이념 대립에 휩쓸려서 그만 경찰에게 잡혀 죽고 만다. 소설은, 죽은 아버지를 보며 아이가 슬퍼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 작품은 해방 이후에 나온 한국 소설 중에서 사회주의자가 인간적으로 나온 최초의 작품이다. 어린 아들의 눈으로 아버지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 내용이기에, 사회주의자를 따뜻한 인간으로 그려냈어도 군사독재 시절에 검열에 걸리지 않았다. 착한 사람이 이념 대립으로 희생당한 사건을 가족의 슬픔으로 그려내서, 이념 대립이 왜 문제인지 알게 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이 작품을 읽고 문학 전공자들이 보편적으로 하는 해석과는 많이 다른 의견을 냈다. 여러 학생이 아버지를 보고 “가족에게 상처를 준 무책임한 가장이다”라고 했다. “괜히 나서다가 희생당했다. 자기 소신도 정도껏 지켜야지, 가족에게 저렇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했다. 그 학생들의 결론은 “나서지 말자”였다.
폭력적인 세상이 착한 사람을 해치는 게 문제라는 의미를 담은 작품을 보고, 여러 학생들이 희생자를 비난했다. 폭력적인 세상에 왜 적응하지 못했느냐는 거였다. 학생들의 이런 반응이 이건 아닌데 싶어서, 나는 넌지시 다른 쪽으로도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다시 논의를 거치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그 학생들은 “적당히 살아야 한다”라고 말을 했다.
학생들은 윤리적인 작품을 비윤리적으로 읽어냈다. ‘학생들이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면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며 여기서 수업을 마치면 떨떠름하다. 이때는 학생의 의견은 존중하되, 교사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왜 학생들은 그런 감상을 했을까? 그것은 그 작품에 나온 모순이 학생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컸기 때문이다. 현실의 모순에 압도당할 때, 학생들이 그것을 개선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 들어서 강자가 지배하는 세계에 적응하려고 한다. 이때 옳고 그름은, 그것을 따지고 싶은 생각 자체가 안 든다.
가난과 빈곤을 다룬 르포, 예를 들면 『길에서 만난 세상』 『4천원 인생』 『벼랑에 선 사람들』 󰡔벼랑 위의 꿈들󰡕 󰡔노동, 우리는 정말 알고 있을까󰡕 같은 책을 읽혀봤더니 일부 학생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공부를 못하면 이런 사람이 된다. 역시 아버지 말이 맞았다. 세상은 약육강식이다. 여름방학 때 학원이라고 끊고 열심히 공부해서 절대 이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 이런 책들을 읽히는 건 우리 사회에 있는 어려운 이들의 존재를 살피면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인데, 교육의 효과는 그렇지 않았다.
사회문제를 다룬 책들을 읽고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하자는 결론을 내리는 걸 잘못된 감상이라고만 할 순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감상이 ‘나나 잘 살자’라는 데만 초점이 맞춰진다는 데 있다. ‘내가 잘 살아서 다른 사람도 함께 잘 살게 하자’가 인간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일 텐데, ‘나나 잘 살자’에 머문다면 그것은 짐승의 본능에 가깝다. 짚신벌레도 약을 뿌리면 도망가서 살 길을 찾을 텐데, 지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원초적인 본능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지 아닐까.
박완서의 『서 있는 여자』를 읽혔을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 작품은 남녀가 서로 도와서 잘 살기 위해 결혼하지만 실제로 결혼을 해서는 남자가 집안일을 안 해서 여자가 굉장히 화가 난다는, 주변에서 흔하게 듣는 이야기다. 결혼 뒤에 변한 남자들을 보고, 소설 속에서 여러 여자가 저항을 하지만 문제 해결이 잘되지 않고 지지부진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작품을 보고서 적잖은 남학생들이 가해자와 공감한다는 것이다. “선생님, 이걸 보니까 참 마음이 놓여요. 요즘 성평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전 아버지처럼은 못 살 줄 알았는데, 이 책을 보니 어차피 현실은 쉽게 달라지지 않네요. 여러 여자들이 노력은 했지만 바뀐 게 뭐가 있어요. 여자들은 그냥 이런 삶을 팔자로 알고 사는 게 어때요?” 페미니즘 소설을 읽은 남학생들이 성차별적인 생각을 더욱 강화하는 경우는 해마다 발견된다.
아무리 좋은 책이더라도 그 책을 읽고서 좋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인간 심리는 그만큼 복잡하고, 인간 존재는 그만큼 단순치 않다. 모두들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있지 않은가?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다는데 대화해보면 이상한 친구 말이다. 많은 인류의 고전들은 특정한 시기에 인간 공동체가 누군가를 피해자로 만드는 일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런 책을 읽고서 강자인 가해자의 시선이나 구경꾼 같은 방관자의 시선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꽤 있다. 사람은 자기 처지에 따라 책을 다르게 소화하고, 자신의 인식 수준과 사고의 깊이에 따라 다른 해결책을 찾곤 한다.
찰리 채플린과 아돌프 히틀러는 똑같이 독일의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났고 똑같이 독일 사회의 교육을 받았지만, 그 삶은 많이 달랐다. 채플린은 자기가 겪은 가난 체험을 예술로 승화시켜 사회적 약자를 감싸고 연민하는 작품 활동을 해서, 많은 이들에게서 존경을 받았다. 반면에 히틀러는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난 데 대한 분노를 마음에 품고서,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며 강함을 추구했고, 독재자로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며 세상을 살아갔다. 같은 책, 같은 세상, 같은 교육을 받아도 달라지는 게 인간이다. 그래서 교사는 어떤 것을 투입했느냐에 만족해선 안 된다. 학생에게 무엇이 남았느냐를 살펴야 한다.
가해자나 구경꾼의 시선을 넘어서려면 교사가 학생들을 살피고 말을 걸면서 의미 있는 교육의 길을 터야 한다. 좋은 책을 읽더라도 그 책을 읽고서 학생이 어떤 생각을 만들어내는지 들여다보고 대화를 해야지만 비로소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진다. 교육방송 같은 일방적인 강의로는 이런 걸 하기 어렵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 눈빛을 마주치고 말을 주고받아야 독서교육은 깊이가 있게 된다.
똑같은 책을 손에 쥐어주더라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의 반응은 다르다. 성적이 낮고 가난한 학생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어렵게 사는 내용을 다룬 책을 읽고 나면 풀이 죽는다. 시무룩해 있어서 왜 그런지 물어보면 심각한 표정만 짓는다. 왜 그런지 물어보면, 자신이 앞으로 그렇게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한다고 답을 한다. 자기 삶이 각박한 학생들에게 사회문제와 관련한 책들은 삶의 의욕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똑같은 한 권의 책이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을 순 없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훌륭한 책을 읽고 훌륭한 생각을 하는 학생은 원래 훌륭한 학생밖에 없다. 상당수의 학생들은 훌륭한 책을 읽은 후 훌륭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성경이나 불경을 그냥 읽는다고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듯이 말이다.
사실 교사에게는 학생들에게 거는 낙관적인 기대가 있다. 흠뻑 몰입해서 훌륭한 책을 읽는 학생을 볼 때면 이 세상이 나아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학생이 나중에 나나 잘 살아야겠다는 서평을 써오면 모든 게 다 헛짓처럼 느껴진다.
 
3. 모둠에서 소통해야 똑똑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책을 고급스럽게 읽게 할까? 어떤 방법을 써야 지식을 얻고 인간답게 성찰하면서 윤리적으로 책을 읽을까.
이에 대한 답은 ‘함께 읽기’에 있다. 나는 학생들을 4인 1모둠으로 나눈 뒤 네 명이 모여서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골라 함께 읽고 서평을 쓰게 한다. 네 명 정도면 책을 두고 이야기 나누는 데도 적당하고, 어휘력이나 이해력이 부족한 학생도 같은 모둠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 책을 잘 읽어내는 똑똑한 학생들은 부족한 학생들을 이끌면서 좀 더 세밀하게 책을 이해하게 되고 남을 가르쳐주는 기쁨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맞춤법이나 표현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뛰어난 질문을 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그런 걸 본 똑똑한 학생들은 친구를 함부로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알아챈다.
평소에 책 읽기에 능숙한 학생들도 여럿이 함께 책을 읽는 가운데서 무언가를 얻어간다. 예를 들면 개인적인 상처나 서러움을 남달리 경험한 학생들이, 특정한 책을 잘 읽어내는 경우가 있다. 뭐든 잘하는 학생들은 잘 모르는 세계일 수 있는데, 자신은 무심하게 지나친 부분에서 어떤 의미를 읽어내는 다른 학생들을 보면서 타인의 마음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글을 읽는 실력 역시 향상된다. 사람마다 책을 읽고 만들어내는 의미가 모두 같을 수 없기에,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과 말을 섞어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 인간은 자기 생각의 위치를 살피게 되는데, 이것 자체가 매우 교육적 과정이다.
이건 성인도 마찬가지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없이 혼자 연구하면 날카로운 비판 능력은 키워지지만 자신의 삶을 가꾸기가 어렵고 비관론자가 되기 쉽다. 함께 공부하고 가치를 고민하며 대화를 나눌 친구는 인간에게 늘 필요하다.
물론 모둠 구성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네 명이 모이더라도 논의가 산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육적 대응이 늘 100퍼센트 성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열 명이 함께 공부할 때 일고여덟 명이 긍정적 성장을 한다면 그것을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학생들의 모둠을 어떻게 구성할지도 고민할 일이다. 모둠 짜기 실험을 해본 결과, 답은 분명하다. 먼저 학생들에게 책을 고르게 한 뒤에 같은 책을 고른 학생들끼리 모둠을 짜면 취향이 맞아서 잘되겠다 싶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같은 책을 골랐더라도 같은 모둠이 된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바로 감정을 표현하는 학생들이 있다.
“에이, 뭐야. 네가 이 책 골랐어. 그러면 나 이 책 안 할래.”
이런 말이 몇몇에게서 나오면 분위기는 금세 싸해진다. 친구가 마음에 안 들지만 억지로 참고 같이 하더라도 대화는 깊어지기가 어렵다. 마음이 어긋나면 문제가 벌어지더라도 해결에 소극적이게 된다. 먼저 책을 고르고, 같은 책을 고른 사람끼리 모이는 모둠 짜기는 착한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교에서나 가능하다.
그러면 모둠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모둠 짜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학생 마음대로다. 마음 맞는 학생들끼리 알아서 자유롭게 모이니까, 할 맛이 난다. 그런데 소외되는 학생이 생길 수 있다. 학생 마음대로 모둠을 짤 때는, 미리 소외되는 친구가 없게 챙기라고 이야기를 해두어야 한다. 남녀 합반이라면 동성끼리는 모둠을 못 만들게 하면 좋다. 그렇게 하면 패거리끼리 모이기가 쉽지 않아서, 소외된 친구들이 더 생긴다.
똑똑한 학생들끼리 모여서 엘리트 모둠을 만들면, 다른 친구들이 기가 죽어 할 맛이 안 난다.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교사가 은근슬쩍 모둠 안에서 상대평가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흘린다. “한 모둠이 모두 같은 점수를 받는 게 아니라, 모둠 안에서 상대평가를 할 수도 있어. 잘하는 학생들끼리 모이면, 열심히 해도 누군가는 4등급을 받겠지.” 이렇게 말해두면, 똑똑한 아이들을 그게 무슨 소리인지 금세 알아듣고, 여러 모둠으로 흩어진다. 물론, 실제 평가할 때는 똑똑한 학생들끼리 모인 모둠에서 열심히 한 학생에게 낮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엄포용으로 말하고, 그 엄포가 먹히게 분위기를 잘 잡아야 한다.
똑똑한 학생들과 좀 뒤떨어지는 학생들이 뒤섞여 있으면 똑똑한 학생들이 좀 뒤떨어지는 학생들을 이끌고 이들에게 여러 가지를 설명해주면서, 그 자신도 언어 능력과 논리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둘째는 교사 마음대로다. 교사가 학생들의 성적을 살펴서 모둠을 짜면, 모둠별로 골고루 학생들이 들어가 있는 게 장점이다. 단점은 자발적인 모임이 아니기에 박력이 떨어지고, 학생들끼리 관계가 틀어졌을 때 교사를 탓한다는 것이다. 안정적인데, 성취가 높게 나오지는 않는다.
셋째는 교사 반 학생 반으로 하는 방법이다. 한 반이 28명이고, 한 모둠이 4명이라고 하면, 교사가 역량 있는 학생 7명을 먼저 뽑는다. 이 학생들은 같은 모둠에 들어갈 수 없고 각각 다른 모둠에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이 학생들이 한 사람씩 자기와 호흡이 맞는 친구를 고른다. 여기까지 하면, 전체 모둠 4명 중에서 2명이 채워졌다.
그런 다음에 아직 모둠에 속하지 않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모둠을 선택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 교사가 실제 2명을 뽑고, 학생들 2명이 자기가 원하는 모둠을 고르게 된다. 학생 마음대로 하거나 교사 마음대로 하는 방법의 장단점이 반반씩 섞여 있게 된다.
넷째는 추첨을 하는 방법이다. 아무 준비 없이 그냥 제비뽑기를 해서 성의가 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괜찮다. 누구나 같은 조건이기에, 결과를 학생들이 운명처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게 장점이다. 모둠을 짜는 데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서 편안하다. 전체적으로 학생들이 공부하는 분위기인 학교에서 추첨은 결과가 괜찮다. 보이지 않는 손이 살펴주었나 싶은 정도로 잘하는 학생과 부족한 학생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주의할 점이 있다. 공부를 안 하는 학생들이 주도권을 잡은 학교에서는 추첨 방법은 신중하게 써야 한다.
모둠은 어떻게 만들더라도 장점만 있지 않고 단점도 함께 있다. 교사가 교실 상황을 잘 봐서, 그리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서 하면 된다. 헷갈릴 때는, 이 네 가지 방법을 칠판에 적고 간단하게 설명한 뒤에,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어 반마다 다르게 정해도 괜찮다.
 
4. 열심히 해도 못하는 아이들 돕기
나는 수업 시간에 쓴 글을 집에 가서 컴퓨터로 입력하면서 보완해오라고 한다. 글을 쓰려면 사색이 필요하고 여백이 있어야 생각이 피어나는데, 수업 시간에는 그러기가 어렵다. 그래서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쓴 글을 바로 걷으면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숙제를 통해 이를 보완할 기회를 주면 글이 확실히 나아진다. 이 과정을 거친 후 교사가 서평을 읽고 고쳐쓰기를 지도하면, 학생들 글이 많이 나아진 것을 볼 수 있다.
글 쓰는 과정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채, 그냥 서평을 쓰라고 하면 학생들 대부분은 “선생님이 시켜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한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쓰는 학생도 있다. “나는 원래 이런 글을 쓰는 체질이 아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얘기했다. ‘너 독후감 안 쓰면 수행평가 점수 안 줄 거야.’ 내가 점수를 안 받고 안 하겠다고 하자, 선생님은 인상을 쓰더니 담임 선생님께 이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글쓰기에서 첫 문장은 마치 땅 밖으로 보이는 고구마 줄기와 비슷하다. 고구마 줄기를 뽑았을 때 땅속에서 고구마들이 주르르 딸려 나오듯, 첫 문장에서 이런저런 그다음 생각이 이끌려나오기 마련이다. 작가들이 첫 문장을 쓰고서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종이를 찢어대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성에 차지 않는 문장으로 시작했을 때 이후에도 빤한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것을 작가들은 잘 알고 있다. 학생들의 글 역시 마찬가지다. 별 감흥 없는 첫 문장으로 글을 시작한 학생들은 이어서 모두 비슷비슷하게 줄거리를 글 속에 채워 넣는다. 그러고서 “읽고 났더니 감동적이었다” 같은 틀에 박힌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 이런 글의 경우 딱 한 가지 장점이 있다. 교사가 글을 채점하는 시간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것! 한 반 학생들의 글을 모두 채점하는 데 20분밖에 안 걸리는 것이다. 물론 그다음에는 씁쓸한 회한이 물밀듯 밀려들지만 말이다.
교사가 된 초창기에 학생들이 물어왔다. “독후감은 어떻게 써야 해요?” 학생들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 나는 책을 펼쳐서 첫 장을 넘긴 후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들었던 생각과 느낌을 글로 옮기면 된다고 답해주곤 했다. 그런데 학생들은 내 말을 듣고서도 눈만 껌뻑거릴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학생들이 잘 못 알아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친절하게 같은 방식으로 설명을 해줬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설명을 반복하다 보니 불쑥 화가 치밀었다. “너희들 대체 왜 못 알아듣는 거야!”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치고서 글을 받아보면 대략 한 반에 다섯 명 내외의 학생들만이 제대로 된 글을 써왔다. 나머지는…… 분서갱유를 해도 아깝지 않은 글들이었다. ‘이런 글은 다 태워버려야 돼. 이런 글이 세상에 있는 게 더 해롭겠어.’ 진시황제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보통 반에서 다섯 명 내외의 학생들은 글을 굉장히 잘 쓴다. 처음 서평 쓰기를 했을 때 나는 이 다섯 명의 학생들을 마음의 기둥으로 삼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 이 학생들은 훌륭한 글을 쓰잖아. 다른 애들이 잘못한 거야.’
그런데 그렇게 마음의 기둥으로 삼았던 한 학생이 학기가 끝난 후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아직도 서평을 어떻게 써야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 그렇구나. 내 수업의 에이스조차도 그런 거구나.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방학 내내 그 학생의 말이 계속 내 머릿속에 울려댔다.
그 학생이 해준 말 덕분에 마치 필름을 되감기해서 재생하듯 1년 동안 내가 가르치는 과정을 되돌아보았다. 학생들은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일관되게 나에게 말했다. 물론 나는 계속해서 뭔가를 가르쳤다. 그런데 학생들은 계속 그래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결국 나는 화를 냈고 상황이 정리되었다.
다르게 비유를 해볼까. 커다란 산이 있었고 나는 계속해서 “이 정상으로 올라가면 돼”라고 말했다. 반면에 학생들은 “정상까지 올라가라는 말은 알아듣겠는데, 어떻게 해야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그 과정을 모르겠어요”라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즉 나는 결과만을 제시했고 과정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체 나는 왜 그랬던 걸까?
이 실패를 돌아보면서 내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그런 식으로만 배워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배우면서도 글쓰기 과정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도서관에 가서 비슷한 책을 찾아 흉내 내면서 좌충우돌 글 쓰는 숙제를 해야 했다. 그런 식의 교육은 되는 애들만 되고 안 되는 애들은 안 된다. 엘리트를 가르치는 방법인 것이다.
사실 이 방법은 인재 발굴을 할 때는 유용하다. 사회적 생산력이 낮아서 모든 사람이 지식을 갖추기 어려울 때, 그래서 소수가 지식 엘리트로서 사회를 이끌고 다수가 생산에 종사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엘리트를 양성한다. 과제를 던져준 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별해내 따로 키우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보편적인 학생들을 성장시켜야 하는 민주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방법이 아니다. 모두가 주권을 가진 사람이고 모두 귀한 집 자식인 시대다. 이런 시대의 교육은 전체 학생이 모두 성장하게 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글을 쓰게 하면 교사는 반드시 그 글을 읽어야 한다. 교사가 읽지 않으면 학생은 금세 알아채고 실망한다. 그러다 보면 학생들은 내용의 완성도에 힘쓰기보다는 분량이나 제출 날짜, 겉모양에 신경을 쓰게 된다. 또한 글을 쓴 이후에는 한 학기에 한 번 정도는 고쳐쓰기를 지도해야 한다. 고쳐쓰기를 하지 않으면 글을 잘 쓰는 학생들만 계속 잘 쓰게 되고 글을 못 쓰는 학생들은 계속 써도 솜씨가 잘 늘지 않는다. 못하는 학생은 못하는 방식이 몸에 배어 있어서, 여러 번 그 활동을 해도 나아지지 않을 때가 많다. 어떻게 해야 나아지는지를 가르쳐주지 않은 채로 여러 번 같은 활동을 하면, 학생에게는 좌절과 상처만 남을 수 있다.
한 학기에 한 번 학생들이 쓴 서평을 읽고 일대일로 2-3분 대화를 나눈 후 학생들이 글을 수정해오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내 마음은 한결 편안해진다. 나는 이 2-3분의 대화에 많은 의미를 두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서 선생님의 수업이 기억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이런 일대일 대화는 학생들에게 많이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4인 1모둠으로 수업을 진행할 때 한 학생에게 2-3분 이야기를 해주면 나머지 세 명의 학생들은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기 서평에 대한 이야기도 도움이 되지만 다른 친구의 서평에 대한 비평까지 들을 때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더 자기 성장에 도움이 된다.
글을 잘 쓸 자질이 있음에도 제대로 못 배워서 글을 못 쓴 학생들은 고쳐쓰기 과정을 거치면 금세 제 실력을 발휘한다. 자기 솜씨를 한껏 보여주는 글을 써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해주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쳐쓰기를 지도하는 데에도 시행착오가 있었다. 교사가 된 첫해에 나는 2주일마다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시킨 후 그 글들을 모두 읽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는 학생들의 글을 고쳐줄 시간이 없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시키고 그 글을 다 읽는 것만으로 자부심에 차 있었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세상의 많은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글을 읽지도 않고 글의 분량과 제출 기한만 따져서 평가하는데, 그래도 나는 학생들 글을 열심히 읽고 평가하잖아.’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내 정성은 학생들에게 가 닿지 않았다. 학생들로서는 왜 자기는 7점이고 다른 친구는 9점인지 알고 싶은데 그 이유는 모른 채 점수만 덩그러니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숫자로만 매겨진 점수는 학생들에게 차갑게 다가갔다. 그런 학생들의 반응에 내 마음도 쓰라렸다.
그 무렵 오래전 경험이 떠올랐다. 학창 시절에 나는 100미터 달리기를 아주 싫어했다. 둘씩 짝지어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리다 보면, 나는 앞으로 죽어라 뛰어가고 있는데도 다른 친구가 점점 앞으로 가니 마치 내가 뒤로 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부끄러웠다. 잘 달리고 싶은데, 아무리 잘 달리려고 애를 써도 그렇게 되질 않았다. 잘 달리는 법을 배운 적도 없었고, 어떻게 연습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만약 체육 선생님이 내가 달리는 걸 보고서 “승훈아, 다리는 이런 각도로 올리고 몸의 무게는 저렇게 싣고 호흡은 이렇게, 팔은 요렇게 해봐”라고 가르쳐주셨더라면 그걸 흉내 내면서 연습이라도 했을 텐데 말이다.
체육 시간에만 그런 게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 경복궁으로 봄 소풍을 가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단짝 친구와 함께 그림을 그렸는데, 친구가 그린 그림이 무척 잘 그렸다고 생각됐다. 친구는 내 그림을 보고 잘 그렸다고 했다. 서로의 그림을 칭찬해주면서 상을 타면 어쩌나 하고 괜한 걱정을 했다.
학교에 돌아와 미술 시간이 되었는데, 선생님이 나와 내 단짝 친구를 호명하더니 둘이서 그림을 들고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그림 잘 그린다는 말을 못 들어본 나는 신이 나서 친구와 함께 나갔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그림 못 그린 학생에게는 뭐라고 하지 않는데, 성의 없이 그린 학생은 용서할 수가 없어.” 이 말을 던지시고는 선생님은 들고 계시던 지휘봉으로 우리 머리를 딱 소리가 나도록 때리셨다.
머리를 맞아서 아팠지만, 그 아픔보다 마음이 받은 충격이 더 컸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 단짝 친구도 어쩔 줄 모르겠는 표정으로 선생님께 맞고 있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이 장면은 오랜 시간이 지나 내가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던 때 문득 떠올랐다. 그렇다. 내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과 닮은 학생들을 내가 교실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강의 평가를 보면, 자기는 열심히 글을 썼는데 돌아오는 점수가 시원찮았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 바로 체육 시간이나 미술 시간의 나 같은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당시의 나는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실습을 시켰고, 그런 교사가 좋은 교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글솜씨가 나아지는 학생이 있었지만, 몇몇 학생들은 한 학기 내내 열심히 글을 써도 나아지지 않았다. 후자의 학생들은 결국 좌절감만 깊어져 갔다. ‘나는 안 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 나와 내 단짝 친구는 미술 선생님이 보기에 성의 없어 보일 만큼 그림을 못 그리는 학생이었다. 우리끼리는 자신의 능력을 알지 못한 채 서로 칭찬해주고 상을 받을까 걱정까지 할 정도로 그림 보는 눈이 없었지만 말이다.
무언가를 잘 못하는 아이들끼리 각자의 결과물을 비교하다 보면 모두 잘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칭찬해준다. 하지만 잘난 선생님의 성에는 차지 않는 결과물이다. 그러니 냉혹한 평가가 날아들고, 못하는 아이들은 결국 풀이 죽게 된다. 미술 선생님께 꾸지람을 들었을 때의 내 마음은 글쓰기를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 경험을 돌이켜보면서 나는 그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학생들의 글쓰기 횟수를 줄였다. 글쓰기는 단순하게 여러 번 하는 것보다 한 번을 하더라도 교사가 결과물을 들여다보면서 지도해주고 학생들이 고쳐올 때 학생들의 성장이 훨씬 빠르다. 이렇게 횟수를 줄이면 교사에게는 결과물을 지도해줄 여유가 생기고, 교사와 학생의 관계도 좋아진다.
5. 고쳐쓰기, 교사와 학생의 동상이몽
한없이 많이 고쳐야만 할 것 같은 학생의 글을 보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때는 그런 글을 고치느라 빨간 글씨가 넘쳐나서 종이를 딸기 밭처럼 만들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고쳐주면 학생들이 고마워할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미워하는 학생도 심심찮게 생겼다. 그걸 받아든 학생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제 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요?” 같은 말만 들었다. 이게 뭐야? 내가 얼마나 열심히 자기 글을 고쳐줬는데, 돌아오는 게 이런 무례한 말이라니!
어느 날 내가 근무하던 학교 교장 선생님의 대처를 보면서 나는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었다. 평소에 나에게 관심을 가지셨던 그분은 내 교직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메모를 열 가지쯤 해두셨다가 교장실로 나를 불러 그 사안들을 꼼꼼히 일러주셨다. 이러저러한 사안들만 보완하면 더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내 기분은 어땠을까?
세 가지까지 들을 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일곱, 여덟, 아홉, 열 가지 이야기를 듣고서 교장실 문을 닫고 나올 때는 이미 내 마음이 비뚤어져 있었다.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하시다니. 교장 선생님 말을 듣고 싶지 않아지는걸.’
선의의 조언이라도 하고 싶은 말을 그렇게 다 내뱉으면 관계가 상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걸 다 지적하면 대부분의 인간은 그걸 견디기 어려워한다. 그러니 지적을 하고 싶더라도 모든 걸 내보이는 게 아니라 개중 몇 개만 골라 말해야 귀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날 이후 나는 학생들의 고쳐쓰기를 지도하면서 힘을 빼게 되었다. 고쳐쓰기는 교사가 대충 가르쳐야 학생들이 배운다. 제대로 하면 오히려 학생들은 배우기를 그만두고 교사와 관계도 상하게 된다.
학생과 일대일로 대화하는 고쳐쓰기 시간은 2-3분으로 정해두었다. 그 이상은 고쳐줄 게 있더라도 말을 아낀다. 지적도 세 가지 이상은 하지 않는다. 그 외의 부분은 친구가 고친 글과 자기가 고친 글을 돌려 읽으면서 스스로 깨우치도록 유도한다. 그래야 교사에게도 좋고 학생들에게도 좋다.
학생들과 일대일로 대화하는 시간도 잘 운영해야 한다. 네 명이 같은 책을 읽고 그 모둠 학생들에게 한 사람당 2-3분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같은 모둠의 네 명과는 총 8-12분가량의 대화를 하게 된다. 그 시간 동안 다른 모둠의 학생들에게는 서로의 글을 고쳐주라고 하지만, 그렇게 놔두면 학생들은 이내 수다의 세계로 빠져든다.
“내가 일대일 대화를 할 때 떠들면 안 돼. 그러면 내 집중력이 떨어져서 잘 고쳐줄 수가 없어.”
좋게 말해도 잠잠한 시간은 고작 5분을 넘기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점점 내 목소리가 커지고 화가 나는데, 그럼 이미 혈압이 오른지라 학생의 글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이러다가는 수업을 망치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은 한 반 수업을 들어가면 다른 두세 반 정도의 글을 수업 시간에 가져가서 학생들에게 나눠준 후 읽힌다. 학생들이 모두 제 날짜에 글을 써오지 않으니 두 반 정도의 글을 모아야 한 반의 모든 학생이 글을 읽을 수 있다. 남의 글을 받아든 학생들에게는 댓글 달기를 시킨다. 마음에 드는 잘 쓴 부분을 보면 동그라미를 그리라고 하고, 이상한 부분에는 네모를 그리라고 한다. 동그라미와 네모, 이렇게 간단한 방식 이상의 것을 요구하면 학생들이 헷갈려하니 이들 두 가지 방식으로만 평하게 한다. 그리고 의견을 적어주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나는 일대일 대화에 집중할 수 있고, 학생들은 글에 집중하게 되어서 수업이 비교적 안정된다. 또한 학생들의 동그라미와 네모 표시가 마치 조교의 초벌 채점지처럼 되어서 일대일로 학생 글을 평할 때도 도움이 된다.
이때 하나 유의해야 할 점은, 같은 반 학생들의 글에 점수를 매기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같은 반 친구가 자신에게 매긴 점수를 보면, 학생들은 정신적인 부담을 너무 받는다. 가장 나쁜 사례는 같은 모둠 안에서 네 사람이 서로를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함께 같은 책을 읽고 대화하며 협력하던 관계가 한순간에 내신 등급을 매기는 관계로 바뀌면서, 좋았던 관계가 크게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로 바뀔 수 있다. “선생님이 이미 다 점수를 매겨놓았는데 너희도 한번 해봐. 다른 사람이 쓴 글을 평가해보면 새롭게 보이는 게 있어서 글솜씨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되거든.” 이 정도의 이야기를 해주며 학생들끼리 상호평가를 시도해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글을 쓰면서 자신의 어려운 삶이나 힘든 가족사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이런 방식을 택하면 다른 학생들이 그런 글을 보게 되는데, 이름을 가리려면 너무 많은 행정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서평 쓰기 수업의 처음부터 자기 글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다는 것을 공표한다. 다만 친구의 글에 나온 힘들고 어려운 일을 가지고 놀리면 안 되고 서로 배우고 성장하려는 마음으로 글을 봐야 한다고 가르친다. 엄격한 표정을 지으며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이 거의 모두 알아듣는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글을 읽고서 교사는 어떤 지적을 해야 할까?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고치는 건 별반 중요하지 않다. 원래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자기는 틀리지만 남이 틀린 건 거의 다 찾아낼 수 있는 법이다. 학생들이 서로 물어가면서 글을 쓰다 보면 대개 저절로 해결된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따로 설명서를 만들어 전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게 좋다. 이때 필요한 설명은, 보통 사람들이 안 틀리는데 학생들이 잘 틀리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다. 이러한 것 딱 열 개만 제대로 가르쳐도 학생들의 글은 훨씬 볼만해진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이 책의 부록을 참조하면 된다.
고쳐쓰기를 지도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살펴야 할 것은 학생들이 내린 가치 판단과 감정 판단에 대한 ‘증명’이다. 어떤 학생에게 짜장과 짬뽕 중 어떤 게 좋은지 물었다고 치자. 학생은 짬뽕이 좋다고 했고, 왜 좋은지를 물었더니 “그냥요”라고 했다. 이게 바로 증명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의 답이다. “국물이 시원해서요” 같은 답변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게 바로 교사가 해야 할 일이다.
상당수의 학생들은 글에서 감정이나 논리의 판단만을 앞세운다.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같은 판단은 밝히지만, 왜 그런지는 글에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걸 증명하면서 풀어내는 게 바로 고쳐쓰기의 핵심이다. 엉성한 논리를 집요하게 물어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그걸 글로 풀어보게 하면, 학생들의 글은 촘촘해지면서 밀도가 높아진다.
그다음으로 살피는 것은, 글에서 어떤 대상을 비판할 때 그 대상 집단을 싸잡아서 비난하는지 여부다. 학생들의 글은 비판적인 기운을 띨 때가 많은데, 이때 종종 전체 집단을 싸잡아서 욕하는 실수를 한다. ‘어른들은 다 그래.’ ‘교사들은 다 그래.’ ‘정치인은 다 그래.’ 하지만 어른들이 다 그런 게 아니라, 그런 어른이 있고 그렇지 않은 어른이 있지 않은가. 교사나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이런 걸 내버려두면 학생들의 사고가 둔해진다.
뭔가를 미화함으로써 진정성 없이 뻔한 상투성을 드러낼 때도 지적을 해줘야 한다. 이런 표현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맥락 없이 예쁜 말을 계속 쓰거나 자기가 소화하지 못한 어려운 말을 계속 쓰는 경우도 지적한다. 자기가 평소에 쓰는 말로 편안하고 솔직하고 쉽게 표현을 해야 소박한 맛이 나면서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글을 쓸 수 있다고 가르친다.
과외 선생님한테는 매번 글을 잘 쓴다고 칭찬받는데, 나에게는 매번 구박을 받는다는 한 여학생이 있었다. 나는 글이 상투적이고 정해진 레퍼토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했지만, 그 학생은 내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느 날엔가 그 학생이 동네 복지관에 가서 장애인과 노인 분들에게 봉사를 하고 와서는 괜찮은 글을 하나 써왔다. 처음에는 몸 아픈 장애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무 추해보이고 불편했는데, 주변의 분위기도 있고 해서 그분들을 도와드렸더니 굉장히 고마워하셨다고 한다. 이제까지의 자기는 이기적인 애였는데, 이걸 하면서 굉장히 좋은 사람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꽤나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서 감동이 확 깨졌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햇님도 내가 훌륭하다고 웃어주었다.” 이 학생은 이런 표현을 써서 마무리를 해야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건 원래 질 떨어지는 동화에서나 나오는 말 아닌가!
이걸 지적했더니, 학생은 이번에도 수긍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다. “다른 학생들이 네 글을 읽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한번 실험해보자. 내가 고르면 네 마음에 안 들 수 있으니 네가 남자애를 하나 골라봐.”
그 학생은 의기양양하게 남학생을 하나 골라 자기 글을 소리 내 읽게 했는데, 이런! 마지막 문장에서 그 글을 듣던 반 학생들에게서 일제히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 이게 뭐야? 정말 깬다!” 좋은 글로 잘 흘러가다가 마지막에 감동이 깨졌다는 걸 그 학생은 그때서야 받아들였다.
 
6. 수행평가 채점 요령, 평가 민원은 이렇게 해결
서평에 대한 평가는 먼저 ‘잘함’ ‘보통’ ‘못함’의 3등급으로 분류한다. 특별히 등급 나누는 훈련을 받지 않더라도 인간은 직관적으로 3등급까지는 어렵잖게 나눌 수 있다. 이 분류는 학생에게 맡기건 교사가 하건 비슷한 결론이 나온다. 그만큼 일반적인 분류라 할 수 있다. 잘함을 30%, 보통을 50%, 못함을 20%로 기본으로 정해두고, 활동 내용에 따라 적절하게 비율을 조정하면 된다.
3등급 분류를 한 다음에 ‘잘함’에서 2-3개를 뽑아서 ‘아주잘함’으로 둔다. ‘못함’에서 2-3개를 뽑아 ‘아주못함’으로 옮긴다. 이렇게 하면 기본 5등급으로 분류가 된다. 이렇게 5등급 분류를 해두면, 성적처리를 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등급 또한 명확하게 나온다. ‘아주못함’ 아래로는 과제 분량이 너무 모자라거나, 아예 안 낸 학생들을 더 낮게 점수를 줄 수 있다.
여러 반을 여러 교사가 가르치는 상황이라면, 학급 평균을 대략 허용 범위 안으로 맞추고, 활동의 1, 2, 3등급 학생의 수를 역시 허용치 안으로 맞추는 게 필요하다. 반 평균과 상위 세 등급의 학생 수를 대략 정해놓고 채점을 하면, 편안하다. 그런데 어느 반 학생들이 더 잘하거나 못했을 때, 반마다 평균을 맞추는 일이 불편할 수 있다. 그럴 때는 어느 한 교사가 들어가는 몇 개 학급의 총 등급별 학생 수를 맞추는 방식으로 학급별 차이를 반영할 수 있다.
채점할 때 교사들이 흔히 겪는 고민으로, 학생의 활동 결과가 등급과 등급 사이의 경계에 있는 경우에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보통’과 ‘잘함’ 사이에 있거나, ‘보통’과 ‘못함’ 사이에 있는 학생들이 있다. 이 수는 상황에 따라서 10-20% 정도가 되어 반에서 서넛에서 대여섯 정도가 되기도 한다. 적은 수가 아닐 때가 있다.
일단 반 평균을 정해두고, 등급별 학생 수를 정해놓았을 때는 거기에 맞추면 이 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나 교사가 혼자 평가할 때는 다음 두 가지 방법을 쓸 수 있다.
첫째, 평소에 그 학생이 어떻게 수업을 들었는지 태도를 보고, 한 등급 위로 올릴지 한 등급 낮출지를 판단한다. 평소 학습태도는 이럴 때 점수에 반영할 만하다. 수업에 얼마나 집중했는지, 교사의 말에 얼마나 호응했는지, 친구를 잘 돕고 친구와 잘 협력했는지 정도를 살피면 무난하다.
둘째, 반 평균에 따라 점수를 준다. 평균이 높은 반에서는 한 단계 낮은 점수를 주고, 평균이 낮은 반에서는 높은 점수를 준다. 반 평균이 낮다는 것은 그 반의 학습 환경이 상대적으로 나빴다는 것이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했다면, 그 학생의 성취는 조금 높게 잡아주어도 된다. 반대로, 반 평균이 높은 반이라면 그 반의 학습 환경이 상대적으로 좋았다고 보기에, 그 학생은 낮은 쪽으로 점수를 주어도 된다. 이미 많은 혜택을 좋은 학급 분위기에서 받았다고 보고, 낮게 점수를 주는 것이다.
교사의 수행평가 채점에는, 채점자가 사람이기에 오차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이런 평가를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하는 이유는 그래야 교육이 깊어지고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줄 때 여러 잡음이 있는데도 오지선다형을 쓰지 않는 이유는, 글과 면접으로 심사해야 공부과정이 깊이 있게 되기 때문이다. 대학의 박사 과정이 그렇듯, 초중고등학교의 공부가 깊어지고 풍부해지기 위해서 수행평가를 하는 것이다. 수행평가의 오차는 학급별 평균이나 상위 3개 등급의 인원수를 맞추는 등의 보정장치를 두면, 적절하게 대응했다고 보아야 한다.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오차를 무릅쓰고 하는 것이다.
물론 평가에 항의를 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다. 나는 그런 경우 만약 ‘보통’으로 평가를 받은 학생이 찾아오면 ‘잘함’에 속한 학생이 쓴 글을 보여준다. 물론 잘 쓴 글 중에서 최상위의 글을 보여줌으로써 분란의 소지를 최대한 줄인다. 평가에 불만 있는 학생이 다섯 명 찾아왔다고 하면 세 명은 친구들이 더 잘 썼다는 사실을 알고 돌아간다. 하지만 두 명은 그럼에도 자기가 더 잘 썼다고 주장한다. 이런 학생에게는 차근차근 왜 그들이 쓴 글이 ‘잘함’에 들지 못하는지 설명해준다. 그러면 둘 중 한 학생은 납득을 하고 돌아간다.
하지만 끝끝내 평가에 승복하지 못하고 화를 내는 학생이 있다. “제가 얼마나 애써서 글을 썼는데요. 친구들은 다 제 글이 좋다고 하는데 선생님만 제 글을 나쁘게 봐요!” 이 학생에게는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게 답이 아니다. 학생이 화가 나 있어서 교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니 말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논쟁을 해봤자 긁어 부스럼이다. 교사는 그런 학생의 화를 받아주면서 차분하게 마음을 위로해줘야 한다. 학생의 하소연을 끝까지 듣고 그 학생이 그 점수를 받은 이유를 찬찬히 설명해주되 교사가 끝까지 화를 내지 않고 학생의 공격에 반격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그 학생과의 상황이 수습된다.
여러 해 관찰해본 결과, 점수에 대한 항의는 상당 부분 심리적 문제이다. 특히 교사가 점수로 학생의 감정에 자꾸 상처를 준 경우에 학생들은 항의를 조금 더 한다. 나는 수업 시간에 지속적으로 학생들을 도와주고, 숙제를 안 했을 경우에도 잔소리를 별로 하지 않으면서 챙겨주려고 하며, 마감하는 날 늦었다고 해서 점수를 깎지도 않는다. 그럼 평가에 대한 저항은 거의 사그라든다.
안타까운 것은 열심히 했는데도 점수를 잘 줄 수 없는 경우다. 열심히 책을 읽고 친구 것도 봐가면서 고쳐서도 써보는 등 애를 썼는데도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을 때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교사가 이런 평가를 하면서 이 정도 상처를 입는 게 더 인간적인 게 아닐까. 그래서 이런 말도 한다. “행정적으로 해야 하기에 등급을 매겼다. 그러나 나는 너희를 점수를 기억하지 않는다. 점수에 한 번 보고 지나가고, 어떻게 더 잘 배울지를 생각해라.”
[붙임1] 국어 수행평가 계획 – 광동고 2019
 
◦수업시간에 교사가 가르치고 학생에게 활동할 시간을 준 내용으로 평가를 한다.
◦여러 평가 활동이 한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해서 학생 부담을 줄인다.
◦개인 활동이라 해도 학생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도록 모둠으로 한다.
◦보고서 쓰기는 모든 학생이 교사에게 도움말을 듣고 글을 고쳐서 다시 낼 수 있다.
 
종류
지필평가
수행평가
비율
30%
70%
구분
기말시험 1회
자료 수집과 정리
(포트폴리오)
생각문제
(논술)
서평, 책 대화하기
(보고서)
수업 기록
(논술)
구술
수업 중 답변·질문
(관찰)
점수
30
10
10
20
10
10
10
시기
7월 1주
4월 3주
4월 3주
4월 4주
-
5월 3주
-
 
◦지필시험은 학기에 1회 본다.
◦수행평가는 모둠마다 주제를 정해서, 그 주제 관련 책을 한 권 이상 사서 읽고 다양하게 활동하며 한다. 책 한 권과 관련해서 자료 수집과 논평(10), 서술형·논술형 문제를 내고 답을 쓰는 생각문제(10), 보고서 쓰기(20), 구술 평가(10)를 한다.
◦포트폴리오는 논문, 보고서, 영상 등을 보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한다. 자료를 공부해온 다음에 수업시간에 다른 자료 없이 기억에 의존해서 글, 도표, 그림 등으로 표현한다. 한 번 하거나 여러 번 한다.
◦생각문제는 책 한 권을 읽고, 자신이 생각을 쓸 수 있는 서술형 문제를 네 개 내고 답을 쓰는 일이다. 에이포 1쪽으로 한다.
◦보고서 쓰기는 1학기에 교사가 활동을 지정해서 한다. 예를 들면, 1학기에 서평 쓰기, 2학기에 책 대화하기와 같은 방식으로 한다. 개인 1인의 기본 분량은 에이포 5쪽이다.
◦수업 기록은 한 사람씩 돌아가며 수업 내용을 글로 기록하는 일이다. 학생마다 학기에 한 번만 기록한다. 자신이 기록을 맏은 수업이 끝난 뒤 일주일 안에 교사에게 낸다. 분량은 에이포 2-4쪽이다.
◦구술 평가는 자신이 쓴 보고서 관련 주제로 모둠이 함께 한다. 세 가지 물음에 답을 한다. 한 번 답변할 때마다 3점 만점으로 평가하고, 1점은 태도이다.
◦관찰 평가인 수업 중 답변·질문은 수업 중에 교사의 질문에 학생이 참신한 대답을 하거나, 교사에게 지적 자극이 되는 질문을 할 때 얻는 점수이다. 자신이 질문을 교사에게 인정받았을 때 학생은 교과서 표지 안쪽에 그 내용과 날짜를 적고, 교사의 서명을 받는다. 한 학기에 5개를 인정받으면 만점이다. 일반적인 답변이나 의미 없는 질문은 횟수로 치지 않는다. 교사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다.
 
- 방침 -
◦약자·소수자·종교·인종·지역·성을 차별하는 태도는 보편 윤리에 어긋나기에, 일단 주의를 주고 그 뒤에 계속 개선되지 않으면 그 행동을 생활기록부에 기록한다.
◦수행평가 성적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학기말에 공개하고 중간에는 공개하지 않는다.
- 평가를 할 때마다 점수를 알려주면 학생은 부담을 견디지 못해 깊이 있는 학업 성취에 방해가 된다.
- 학기 중에는 ‘제 점수가 몇 점’이냐는 물음에 답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더 잘하느냐?’에만 답한다.
◦모둠 활동은 개인 점수, 공동 점수를 따로 매겨서 1:1 또는 2:1 비율로 더할 수 있다.
 
내용
설명
방법
평가 기준
횟수
만점
자료 수집과 정리
수업 주제와 관련된 책, 영상물, 보고서를 찾아 모으고 새로 안 사실을 정리하기
포트
폴리오
▶일정에 맞게 정리했는가?
▶요구한 분야와 개수에 맞게 했는가?
▶수준 있는 자료를 모았는가?
▶논평을 자기 언어로 정리했는가?
▶전달력 있게 내용 정리를 했는가?
▶문법에 맞게 문장을 썼는가?
수시점검
10
생각문제
주제와 관련해서 질문을 만들고, 답 쓰기
논술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는가?
▶논리는 설득력이 있는가?
▶자기 경험과 연결 지었는가?
▶구성은 적절한가?
▶문장은 정확한가?
▶한글맞춤법에 맞게 썼는가?
1회
10
보고서 쓰기
주제와 관련해서 체계 있게 보고서 쓰기
보고서
▶의미 있게 내용을 펼쳤는가?
▶논리 전개는 안정적인가?
▶자기 주변의 일과 연결 지었는가?
▶전달력 있게 썼는가?
▶구성은 안정적인가?
▶문장은 정확한가?
1회
20
수업 기록
수업시간에 나온 말, 행동, 생각을 묘사하고 비평하기
논술
▶수업 내용을 세밀하게 재현했는가?
▶수업 주제가 잘 드러났는가?
▶수업 장면에 대해 자기 의견을 썼는가?
▶판단에 대한 근거가 적절한가?
▶학생들의 마음이 표현되었는가?
▶문장이 정확한가?
1회
10
구술
물음에 학생이 대답하기
구술
▶질문에 맞게 대답하는가?
▶내용을 잘 알고 있는가? 
▶전달력 있게 표현하는가? 
▶자기 언어로 말하는가?
▶판단에 대해 근거를 대는가?
▶설득력 있게 말하는가?
1회
10
수업 중 답변·질문
수업 중 교사의 질문에 의미 있게 대답한 횟수, 교사에게 좋은 질문을 한 횟수를 봄
관찰
▶좋은 답변, 질문을 했는가?
- 1회에 1점씩 주어서 10점 만점
- 기본점수 4점부터 시작
- 정의적 평가 중 참여의식을 살핌
수시점검
10
 
 
[붙임2] : 28명 교실에서 수행평가 종류에 따른 비율과 등급별 학생 수 운영 사례
- 먼저 채점한 교사가 평균과 등급별 학생 수를 다른 교사에게 안내한 자료
 
◦포트폴리오 평균 8±0.2
10점(2-3명) 9점(6-7명) 8점(14명) 7점(4-5명) 6점(1-2명)
 
◦생각문제 평균 7.9±0.2
상은 10-9점, 중은 8-7점, 하는 6-5점으로 분류. 8점까지 20명.
10점(2-3명) - 4문제를 적절한 질문과 충실한 답변. 질문이 날카롭고 자신의 의견을 근거와 함께 제시
9점(10명) - 4문제를 적절한 질문과 충실한 답변
8점(7-8명) - 질문도, 답변도 그냥 평범한 수준
7점 - 책 내용이 없어도 되는 질문. 책 내용을 정리한 수준이거나 책을 안 읽어도 가능한 뻔한 답변
6점 - 질문이나 답변이 성의 없음 (예를 들면 답이 2-3줄이거나 하는 등)
5점 - 4개가 아닌 3개나 2개의 질문만 썼고, 답변도 형편없음
 
◦서평 평균 18±0.2
20점(5명) - 큰 제목과 소제목이 주제와 연관이 있으며 참신하고, 전체 내용이 의미 있고, 구성이 좋고 전달력이 있으며, 자기 주변의 일과 잘 연결 지은 글
19점(7명) - 위 항목에서 2% 부족하여 20점을 주기 어려운 글
18점(9명) - 보통의 평범한 수준의 글
17점 - 자신의 생각이 별로 없고 책 내용 중심으로 전개한 글
16점 - 5쪽은 채웠지만 소제목과 내용이 연관이 없고 맞춤법도 많이 틀린 글
15점 - 5쪽을 채우지도 못하고 제출에 급급한 글
+-를 점수에 표시해서, 그 반에서 해당 점수대가 많고 적고에 따라 조정
 
◦구술평가 평균 7.5±0.3
단점이 없으면 3점이 아니라 2점을 줌. 3점은 뛰어나야 줌. 이 점이 매우 중요!
3점 – 유창성, 내용성 모두 다 좋음
2점 – 무난함. 특별한 단점이 없을 때
1점 – 부족함. 주장이나 판단에 근거가 약할 때
 
◦수업기록 평균 7.5±0.3
10점(5명) 9점(5명) 8점(10명) 7,6,5,4점은 재량껏. 8점까지 20명
 
◦수업 중 답변·질문 평균 7.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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