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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꼬방 대문 2015년 추운 가을
조회 61
회원이미지물꼬방
2015-11-05 21:53:09
       
내 인생의 시
포두중학교 김은희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가까이 끼며, 무릎을 끓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믈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
 
누구에게나 표정이 심각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시절이 있을 것이다. 나도 유치한 또래를 비웃으며 진지한 사색에 잠기던 때가 있었다. 그 때가 나의 10~20대였다. 그리고 그 시절 나를 혼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구심점 역학을 해준 것은 백석의 시 한 편이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읽으면서 ‘갈매나무’라는 단어가 오래도록 생각나게 되었다. 눈을 맞으면서도 굳고 정하게 서 있는 푸른 나무.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서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작은 바람에도 무수히 흔들리며 고민하고 나약해지고 급기야 눈물흘리던 때였기에 갈매나무를 나의 이상향으로 정하였다. 친구들이 옆에서 “갈매나무가 뭐냐, 넌 갈매기와 어울려.” 라고 놀려대도 나는 항상 갈매나무를 외쳤다.
고 3 시절, 서울대를 꿈꾸었으나 수학 점수는 바닥에서 좀처럼 반등의 기미가 없었다. 선생님은 고 3이 무슨 펜팔이냐며 나를 혼내셨고 나는 되바라지게 학생의 인권을 주장했다. 그런 치기어린 시절 갈매나무는 완벽한 존재로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열정이 끓어 넘치던 20대를 보내고 나는 30대가 되었다. 무언가 스무 살의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30대는 흔들림없는 안정적인 나무 같은 것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어울리는 시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원 때문에 십원 때문에 일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어느 날 고궁을 나서며」, 김수영
 
올해 나에게 어울리는 것은 이 시인 듯싶다. 봄에 독서 모임 선생님들과 김수영 시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다.
그렇지만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 등에 한 번씩 얼굴을 비춘 내 경험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다.
세상은 여전히 부조리하고 지금의 나는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을 안다. 그래서 투쟁에 전면적으로 나서지 못한다. 내 일상의 삶도 점점 커져서 가끔은 세상살이를 외면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부끄러움은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시위에 참가할 순 없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에 쌍용차 투쟁도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도 잊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당에
녹음 가득한
배를 매다
 
마당 밖으로 나가는 징검다리
끝에
몇 포기 저녁별
연필 깎는 소리처럼
떠서
 
이 世上에 온 모든 生들
측은히 내려보는 그 노래를
마당가의 풀들과 나와는 지금
가슴 속에 살고 있는가
 
밧줄 당겼다 놓았다 하는
영혼
혹은,
갈증
 
배를 풀어
쏟아지는 푸른 눈발 속을 떠갈 날이
곧 오리라
 
오, 사랑해야 하리
이 세상의 모든 뒷모습들
뒷모습들
「마당에 배를 매다」, 장석남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기의 나는 이런 모습이고 싶다. 현재의 내 모습과 견주어 보면 거리감이 꽤 있는 듯하다.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작은 집을 짓고 낮에는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저녁에는 남편과 함께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싶다. 할머니가 되면 젊은 날에 잘 읽지 않는 시도 더 여러 편 읽겠지. 주말에는 뜻이 맞는 친구와 차 한 잔을 마시면 좋겠다. 한 달에 한 번은 이웃을 위해 봉사를 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저녁별이 연필 깎는 소리처럼 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만큼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다. 마당에 있는 풀 이름도, 나무 이름도, 꽃 이름도 모두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리고 마당에 배를 매며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도 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젊은 날엔 후회없이 살고 싶다. 그리고 늙어서는 온 몸에 힘을 빼고 유영하듯 살아가고 싶다.
 
 회원이미지박정인  2015-11-05 23:01   답글    
우와... 김은희 샘 멋있다...
 회원이미지임미진  2015-11-06 08:45   답글    
그러게요. 은희샘의 이름이 갈매나무였구나...은희샘의 성장기를 잠깐 엿본 느낌이에요..
'마당에 배를 매다'시 좋네요~~^^
 회원이미지한창호  2015-11-06 10:02   답글    
아.. 이 선생님 진짜 멋있네...!!! >.<
 회원이미지송승훈  2015-11-06 18:14   답글    
물꼬방 누리집이 환해지는데요 이야~
저 시가 은희 샘과 같이 있으니 더 잘 읽히네요
 회원이미지김영희  2015-11-09 09:30   답글    
어머 새색시다, 새색시 ♥_♥
 회원이미지김인덕  2015-11-10 18:05   답글    
아, 멋있다. 은희쌤과 물꼬방 모임을 가기 위해 몇 시간이고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어서 좋아요.
어쩌면 은희쌤과 함께 가는 길부터가 물꼬방 시작인지도. 신혼여행지 날씨는 어떨지 궁금^___^
 회원이미지김은희  2015-11-10 22:55   답글    
으악! 독일 뮌헨에서 와이파이가 잘터져서 밴드보고 왔다가 깜짝 놀랐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회원이미지송승훈  2015-11-27 08:00   답글    
   우아 독일, 그런 데도 가보다니
 회원이미지하고운  2015-11-11 08:12   답글    
힝............. 은희샘! 글이 진짜 너무너무 좋아요 ㅠㅠㅠㅠㅠ 흐엉
 회원이미지임미진  2015-11-19 12:45   답글    
앗!
    회원이미지stroller  2015-11-25 09:24   답글    
   ㅎㅎ
      회원이미지물꼬방  2015-11-26 11:01   답글    
     다음은 어느 분 차례인지 짐작이 가시죠? ^^
        회원이미지stroller  2015-11-28 10:58   답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님.ㅎㅎ (근데 짐작도 하기 전에 다음이 떴어욥.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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