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게시판 > 추천도서
처음으로  
  Search
Start
Get Cookie : ASDHFASDJK_Naramal
Cookie Exist
0001-01-01 00:00

End
전국국어교사모임 바로가기



오늘방문 : 18
전체방문 : 56,703
 
 
   책장-강력추천,이책!
학생들에게, 혹은 교사들에게 권할만한 책을 소개합니다.


 댓글을 남겨주세요 close  
제목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스포일러 포함)
조회 93
회원이미지김은희
2016-04-18 20:50:18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스포일러 포함)
 
기억과 진실
 
나는 기억의 왜곡과 삭제의 달인이다. 친구들과 옛날 이야기를 하면 나는 기억나는 일이 몇 가지 없어서 말할거리가 없다. 친구들이 “은희야, 너가 옛날에 이랬어.”라고 말하면 그 사건 속 주인공이 나인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낯선 일 투성이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단순히 ‘학교폭력의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의 관계’라고 해석했다. 가해자의 어머니는 어쩌면 그토록 집요한지 무서울 정도였다. 그러나 두 번째 읽었을 때 나는 이 소설이 ‘기억’에 관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138쪽
아까 카레 있잖아요. 남자가 불쑥 입을 열었다. 영훈이는 카레 싫어했어요.
영훈이가 카레 싫어했다고? 그걸 네가 어떻게 아니?
학교에서 점심으로 카레가 나왔을 때 그걸 바닥에 버리고 저더러 핥아먹으라고 했어요. 자기는 집에서 카레를 너무 많이 먹어서, 카레만 보면 토가 나온다고. 이제 기억이 나네요.
영훈이가.......
좀 짓궂은 데가 있었어. 아주머니가 말했다. 남자애들끼리는 짓궂은 장난 많이 치지 않니.
 
이미 나는 마음 속에서 피해자 주인공을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주인공은 가해자를 14번이나 찔렀으니 정당방위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정말 ‘죽이려고 작정’한 것일 수도 있겠다.
정말 궁금하다. 남자는 아주머니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같으면 증오를 느낄 법한데. 남자의 최종 선택은 너무나도 선량하다.
 
주인공과 가해자의 어머니 사이 한 여자가 있다. 여자는 불행한 자신의 가정사를 주인공에게 토로한다.
 
68쪽
나한테 제일 오래된 기억이 뭔지 알아? 여섯 살 때인 것 같은데 우리 엄마가 식칼을 자기 목에 대고 죽이라고 막 악을 쓰던 장면이야. 죽여, 죽여! 그러는 거. 식칼이 목에 닿아서 살갗에 피가 막 나서 흘렀어.
69쪽
언니는 자기 워크맨이 있어서. 그 이어폰을 나한테는 안 줬어. 자매가 이어폰을 하나씩 한쪽 귀에 꽂고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 언니는 그걸 다 자기 귀에 꽂았어.
 
당연히 언니도 무서웠겠지. 그래도 나는 내가 중학생이고 나한테 어린 동생이 있었으면 엄마 아빠가 그렇게 싸울 때 그 동생을 꼭 안아줬을 거야.
 
불행한 가정사를 지닌 여자. 자기가 가정에서 피해자이고 학창시절 이름이 같은 두 명의 친구에게 눌려 기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친구의 증언은 어떠한가.
 
157쪽
막 괴롭히고 그런 건 아니지. 그런데 그 때 네 주변에 있는 애들이 되게 센 애들이었어. 네가 그 애들을 몰고 다녔지. 네가 한 말이 말 자체는 별거아니었는데 주변 애들한테는 그게큰 보람을 따 시키라는 뜻으로 들렸어.
 
 
어느 것이 진실인가. 사람의 기억은 이렇게도 다르다.
쉽게 뭉뚱그려 사람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게 전부인가. 기억과 진실은 같지 않다.
 
10쪽
시공간연속체 밖에는 시간이 없어. 시공간연속체 안에는 시간이 있고. 그게 전부야. 대부분의 우주 지성체들에게는 시간도 공간처럼 앞이나 뒤가 없어. 굳이 정의하자면 먼저 보이는 게 앞이고 나중에 보이는게 뒤라는 정도지. 반대편에서 보면 정확히 반대가 되는, 상대적인 개념이야. 오직 인간만이, 시간을 한쪽방향으로 체험하지. 그 속도를 조절하지도 못하고. 아주 드라마틱해. 모든 사건을 한쪽 방향으로, 단 한 번씩만 경험하니까.
 
우주지성체처럼 앞과 뒤를 동시에 보지 못하는 인간은 한쪽방향만을 본다. 한쪽 방향만을 기억한다.
 
나는 나에게 유리한 기억만을 가지고 있는가. 이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건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삭제해버렸을까.
사람들의 기억을 모두 모으면 진실이 될까.
내가 하루에 내뱉는 말에는 얼마만큼의 진실이 있을까.
우리는 소설가처럼 하루에 한 편씩 이야기를 쓰고 무의식중에 편집해버리고 있다.
 
 
 
 
 회원이미지임미진  2016-04-29 09:04   답글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기억을 다룬 책들을 읽다 보면 내 기억에 대해 자신이 없어져요.
은희샘 말대로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들만 남기고 왜곡, 삭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그런데 또 어찌 보면 그래서 살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글 참 좋아요~~^^ 이 책 읽고 싶어지네요,,,
댓글을 남겨주세요     ( 0 / 2000자 ) ( 최대 2000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