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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조회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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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이미지임미진
2015-08-24 20:25:36
       
다시 읽었는데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기고하기 위해 쓴 글인데 올려봅니다.
 
  . 앵무새 죽이기
 
 최근 하퍼 리의 유고작 ‘파수꾼’이 출간되면서 그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 가 같이 조명되기에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앵무새 죽이기’를 다시 읽어보게 됐는데 이 소설은 최근 읽은 어떤 글보다도 나를 매혹시키면서 여전히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다.
 이 소설이 그렇게 매혹적인 이유는 물론 서술자인, 똑똑하면서도 순수한 영혼을 가진 스카웃과 장난기가 많으면서도 다정다감한 그의 오빠 젬의 고민과 성장이 너무나 사실적이고도 사랑스럽게 그려져 있어서이지만 나를 가장 매혹시킨 인물은 아버지인 애티커스 핀치이다. 사실 애티커스 핀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상식적인 인물인데 아마도 이 인물이 매력적인 이유는 나의 바람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메이컴은 1930년대 미국 남부 지방의 작은 마을로 아직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남아 있고 집안에 따른 계층 구분이 공공연히 드러나는 곳이다. ‘~집안’이라고 하면 이미 그 특징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새겨져 있어서 이 마을에서 개인은 개인이 아닌 소속 ‘집안의 일원’으로 인식된다. 그렇기에 이런 마을에서 유일하게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는 ‘래들리 집안’은 유독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특히 이 집의 아들인 ‘부 래들리’는 온갖 소문과 전설이 덧붙어 유령화 되어 심지어 래들리 집에서 열린 호두나무의 열매조차 아무도 먹지 않고 이 집으로 공이 날아가도 아이들은 줍지 않는다.
 하지만 애티커스 핀치는 호기심에 찬 젬과 스카웃이 부 래들리의 집에 대해 관심을 드러내며 장난을 치려 할 때마다 그들을 제재하다가 마침내 아이들이 래들리의 집에 낚싯대를 내려 쪽지를 전하려는 모습을 발견하자, 그를 귀찮게 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그가 나오고 싶으면 나오고 호기심에 찬 아이들을 피해 집 안에 있고 싶으면 그렇게 할 권리가 있는 거라며 그건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얘기를 해준다. ‘야밤에 아버지가 노크도 없이 너희 방에 불쑥 들어온다면 기분이 어떻겠느냐. 너흰 그와 같은 일을 래들리 씨에게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라는 말로 아이들을 훈계하고, 젬이 래들리 씨를 놀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자 ‘그가 살아온 삶을 이웃의 생각으로 교화시키려 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타인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일방적 잣대로 행해지는 수많은 관심과 간섭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인종차별이 여전한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핀치가 흑인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은 핀치에 대해 검둥이 옹호자라고 비난하고 그의 아이들도 학교 친구들과 이웃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을 당해야 됐는데 이에 화가 난 스카웃이 아버지에게 왜 그 사건을 맡았냐고 묻자 핀치는 자신이 이 공판을 맡지 않고는 이 마을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고 너희들에게 어떤 일이든 가르칠 수조차 없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계속되는 마을 사람들의 비난에 스카웃이 다시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를 틀렸다고 말하니 아버지가 틀린 것일 수도 있지 않냐’고 질문하자 핀치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한다.
  “그들도 분명 그렇게 생각할 자격이 있고 그들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겠지. 그러나 사람은 다른 사람과 살수 있기 전에 자기 자신과 잘해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거란다. 다수 의 원칙에 의해 지속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인간의 의식이란 거지.”
일반적으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가치에 기대어 행동하기에 다수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는 의기소침해지고 영향을 받게 마련인데 먼저 ‘자신과 잘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는 기준을 가지고 ‘옳은 것’을 결정한 핀치의 모습은 너무나 당당해서 빛났다.
 핀치의 또 다른 훌륭한 점은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도 드러난다. 핀치가 흑인의 변호를 맡으면서 스카웃과 젬이 지나갈 때마다 핀치에 대한 비난을 끊임없이 퍼부어 아이들을 괴롭히는 두보스 할머니가 있었다. 젬이 두보스 할머니가 자신의 아버지를 비난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동백꽃을 모조리 꺾어 밭을 망쳐놓자 그는 아들에게 ‘그 분의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네가 질 수는 없는 거야’ 라는 말을 하며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좌우되지 말고 자신이 행동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얼마 후 돌아가신 두보스 할머니가 젬에게 남긴 동백꽃 한 송이가 담긴 상자를 건네며, 그걸 보고 화를 내는 젬에게 모르핀 중독자인 두보스 할머니가 죽음을 한 달 정도 앞두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이 세상 어떠한 것에도 매이고 싶지 않다’며 모르핀 주사를 끊은 사실을 말해주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분은 훌륭하셨다. 물론 나와는 다른 견해였지만 사물에 대한 안목이 있으셨지. 젬, 난 이미 말했듯이, 네가 그런 행동을 안 했다 해도 내가 널 그분께 보냈을 거야. 그 이유는 그분의 어떤 것을 네가 배우길 바랐기 때문이다. 나는 네게 진짜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주 고 싶었다. 총이나 들고 있는 남자들의 어쭙잖은 용기가 아닌 진짜 용기 말이다.”
핀치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려는 가치를 지키는 모습을 인정할 줄 알았던 것이다.
 이 소설은 1930년대 미국 남부의 사람들이 흑인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죄 없는 한 흑인을 어떻게 죽여갔는가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고정된 시각으로 타인의 입장에 서보지 않고 무분별하게 행하는 타인에 대한 판단과 여러 종류의 폭력이 우리 주변의 ‘앵무새’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따뜻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이성이 무분별하게 흘러갈 때 서로의 관계를 직시하게 해 주는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그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어른이 남아있고 서로 가치관이 달라도 무엇이 잘못된 행동인지는 판단하고 비판할 줄 아는 언더우드 씨와 같은 기자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끊임없이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하여 경계하고 비난하여 매장하는 사회는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30년대 미국 남부의 사회보다 상식적인 사회일까. 가치관이 다르더라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 애쓰고 그 삶을 인정할 줄 아는 최소한의 상식을 갖춘 사회이기를 바란다.
 
 
 회원이미지한창호  2015-08-25 07:28   답글    
샘 덕분에, 출근길에 장편 소설 한 편 잘 읽었네요. ^^
잔잔하면서도 분명하고 힘있게 읽히는 샘의 글이 참 좋아요. :)
맞아요, 저도 우리 사는 세상이, 샘의 바람처럼 그리 되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글 남겨주어 고마워요 샘! ^^
 회원이미지김병섭  2015-08-30 00:20   답글    
약자의 편에 서는 것.
죽을 힘을 다해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
죽음을 대면하는 용기에 경의를 표현하는 것.

진정으로 약한 아이들의 학교에서 교사로 살 것.
죽을 힘을 다해 학생을 존중할 것.
죽음을 대면하는 용기로 가르칠 것.

핀치와 같은 교사로 사는 것
핀치와 같은 아버지로 사는 것

아이를 가르치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대한 일인가
깨닫는 순간들이 덜컥, 달려 옵니다.

음...미진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내내 명심하며 살겠습니다.


 회원이미지박정인  2015-08-30 18:34   답글    
전 요즘 최규석의 송곳이라는 만화를 읽으면서
운동, 투쟁에 대해서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과 조금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는데요.
이게 미진샘 글과 비슷한 맥락도 되네요.
만화 속 고구신이라는 인물과 앵무새 죽이기 속 핀치라는 인물의 말들이 저에게 울림을 줍니다.

뭔가 미진샘 말처럼 정리된 말로 쓰고 싶은데
머릿속에 맴돌기만 할 뿐 표현이 안 되네요.

하나 제 머릿속에 또렷이 박힌 고구신의 대사는
'선한 약자를 강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란 말이요.'

늘 정의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핀치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려는 가치를 지키는 모습을 인정할 줄 알았던 것이다..
저는 왜 시시한 약자도, 시시한 강자도 모두 인정을 못했는지..

요즘 학교에 많은 문제들이 지뢰처럼 묻혀 있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미진샘 글에 공감된다는 이야기가 왜 이리 길어졌죠? ^^;;
    회원이미지임미진  2015-08-30 22:14   답글    
   네 샘 오늘 밀양송전탑 얘기를 다룬 영화 '밀양아리랑'을 봤는대요.
그 영화 관람 후 감독과의 대화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왔어요. 싸움을 하다가 포기하고 합의하는 도장을 찍은 주민들은 그 후에는 계속 싸우는 분들과의 사이가 더 나빠진다는 얘기요.
그 대화 후 황지영샘도 만화 '송곳' 속의 얘기를 하더라구요. 회사의 회유에 의해 도장을 찍은 노동자가 더 먼저 넘어진 동료이지 적은 아니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감독의 말이 그런 맥락인 것 같다구요.
제가 이 감상문을 쓰면서 든 생각도 저 역시 요즘 다른 사람에 대해 '왜 저래?'라는 말이 입에 붙어있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면서 최근 이진경 샘의 책에서 복수를 다룬 영화에 대해 다룬 글을 읽으며 계속 나와 적을 구분하다보면 결국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도 나의 생각과 같지 않으면 적이 될 수 있다는 글에서 받았던 충격도 떠올랐구요.
갈수록 잘~ 살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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