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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물려주신 유산 (서정홍 글, 작은책 2015 2월호 수록)
조회 62
회원이미지송수진
2015-03-14 23:45:42
       
어머니가 물려주신 유산


서정홍/ 합천 농부

 

나는 1958년 5월 5일 경남 마산시 월영동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한 산골 마을이었다. 동무들과 뛰놀던 작은 골목길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만, 내 마음은 오늘도 어릴 적 살던 산골 마을에 있다.


벌써 고향 떠나온 지 삼십삼 년이 지났다. 지금은 새로 생긴 산복도로가 마을을 갈라놓고, 가슴 한쪽에 남은 그리움마저 갈라놓고, 사람들 뿔뿔이 흩어졌지만, 사라지지 않고 내 곁을 따라다니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리움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일제 강점기 때, 아버지는 일본에서 목수로 일하다가 쌓아 둔 목재가 무너지는 바람에 발목을 다쳤다. 일하다가 다쳤는데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왜놈들에게 쫓겨났다. 낡고 부서진 기계처럼 아무렇게나 버려진 아버지는 해방을 맞아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마산 산골 마을에 터를 잡았다.


아버지는 발목을 다치고부터 밤낮도 없이 맨날 술을 마시며 세월을 보냈다. 그래서 어머니 혼자 힘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만 했다. 어머니는 대부분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했다. 막노동 일자리조차 얻기 어려운 시절이라 어머니는 뼈가 부수어지도록 일을 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집안을 이끌어 나갔다. 공사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는 때때로 밥 먹을 힘조차 없다고 했다. 시멘트와 페인트로 얼룩진 일옷을 벗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밥도 드시지 않고, 그대로 쓰러져 자는 날이 잦아졌다. 이른 아침마다 꽁보리밥을 물에 말아 드시고는 기계처럼 벌떡 일어나 일하러 나가셨다. 어머니 손은 공사장 벽돌보다 더 거칠고 단단했고, 독한 시멘트 탓에 쩍쩍 갈라진 발은 동상에 걸려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양말이 귀했던 때라 겨울에도 어머니는 양말조차 신지 못하고 일하러 다니셨다. 어릴 적에 동상 걸린 내 발도 오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겨울철만 되면 붓고 가렵다. 그때마다 나는 동상 걸린 어머니 발이 떠오른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에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삼 학년쯤 되었을 것이다. 푹푹 찌는 더운 여름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막노동판에서 벽돌을 등에 지고 비지땀을 흘리며 일하는 어머니를 함께 지나가던 동무들이 보고 말을 걸었다. “정홍아, 저기 일하시는 분이 네 어머니 같은데?”, “잘못 봤어, 우리 어머니 아니야. 우리 어머니는 저런 일 안 해.”


다 떨어진 옷을 입고, 힘든 노동에 지쳐 뼈만 남은 얼굴로 일하시는 어머니를, 나는 보고도 못 본 척했다. 그날부터 나는 사십칠팔 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머니 일하시던 공사장, 그 길 가까이 가지 않았다. 내 어린 시절의 부끄러움이 그 길에 배어 비바람 불고 눈보라 몰아쳐도, 아무리 씻고 또 씻고 지워도 그대로 남아서, 시퍼렇게 멍든 상처로 남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 ….


나는 가끔 ‘세상 욕심’이 내 마음속에 끼어들어 마음을 흔들어 놓을 때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내가 열 살쯤 되던 어느 추운 겨울밤이었다. 어머니는 주무시다 일어나 옷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잠을 깬 나를 보고 물었다.
“정홍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서 겨울 점퍼를 하나 주웠는데 어쩌면 좋겠냐?”
“어머니한테 맞으면 그냥 입지요. 누가 버린 것 같은데.”
내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어머니는 걱정 어린 눈빛이 가득했다.
“아니지, 아니야. 이렇게 좋은 옷을 누가 길거리에 버렸겠냐. 모르고 흘리고 갔겠지. 지금쯤 주인이 이 옷을 찾아서 난리가 났을 거야.”
춥고 깊은 겨울밤에 어머니는 두 시간 남짓 걸어서 그 옷을 제자리에 두고 오셨다. 그리고 편하게 주무셨다. 어린 나이였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편하게 주무시는 모습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국민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다녔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 벌어서 공부(야간 학교)를 했다. 야간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어느 겨울밤, 나는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어머니!” 몇 번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방문을 살며시 열어 보니 어머니는 벽에 기대고 앉아서 주무시고 있었다. 연탄불은 꺼진 지 오래 되었다. 형과 누나들은 객지로 돈 벌러 가고 없는 싸늘한 방에서, 아무도 없는 쓸쓸한 방에서, 어머니는 혼자 앉아서 영원히 잠이 든 것이었다. 어린 자식들 먹을 양식과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어머니는 그렇게 쓸쓸하게 돌아가셨다. 한평생 옷 한 벌 사 입지 못한 어머니였는데, 한평생 화장품 한 번 바르지 못하고 파마머리 한 번 하지 못한 어머니였는데… ….


아버지는 술병으로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굶어서 돌아가셨다. 막노동판에서 새참으로 나오는 빵 한 조각 목으로 넘기지 못하시고 자식들 먹일 거라고 보물처럼 싸서 집으로 가져오던 어머니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시집살이 떨쳐 버리고 싶다고 보내온 큰 누님의 편지 한 장을 장롱 밑에 숨겨 두었다가 틈만 나면 꺼내서 울던 어머니였다. “이년아, 시집살이 힘들면 똥도 못 눠. 똥 잘 누는 년이 무어 고되다고 야단이냐”며 밤새 혼자서 중얼거리시며 뒤척이던 어머니였다.


나는 땅 한 평 방 한 칸 물려주지 못하고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덕에, 가난한 이웃들과 땀 흘려 일하고, 웃으며 밥을 나누어 먹을 줄 알고, 밤새도록 마음 나눌 줄 알고, 큰 슬픔도 가슴에 품고 말없이 견딜 줄 알고, 아무리 작은 일에도 고마워할 줄 알고, 무엇보다 사람 귀한 줄 알고 산다. 되돌아보면 모자라고 잘못한 일이 수두룩하지만 이나마 내가 ‘사람 노릇’ 하고, 이나마 죄를 적게 짓고 사는 까닭은 어머니가 물려주신 ‘가난’이라는 아름다운 유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한평생 일밖에 모르고 사시다가 자식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쓸쓸하게 돌아가신 어머니! 이 세상에 어머니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공부만 하는 공부벌레가 되었을지, 일만 하는 일벌레가 되었을지, 돈만 생각하는 돈벌레가 되었을지, 눈에 보이는 것밖에 모르는 바보가 되었을지, 무엇이 소중한지 모르는 멍텅구리가 되었을지, 마음 나눌 벗 하나 없는 외톨이가 되었을지, 가난한 농부 귀한 줄 모르는 얼간이가 되었을지, 내가 살려고 남을 속이는 사기꾼이 되었을지, 그리하여 귀한 밥만 축내는 버러지가 되었을지, 어쩌면 도시 시멘트 속에 갇혀 이미 송장이 되었을지… ….  누가 어찌 알겠는가.


어머니는 이미 떠났지만 나는 아직 어머니를 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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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과 관련지어 읽으면 좋은 서정홍 시인의 시

 

지금까지 (서정홍)
 
어머니 살아 계실 적에는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푹푹 찌는 더운 여름날, 당신이 막노동판에서 벽돌을 등에 지고 비지땀을 흘리며 나르실 때, 함께 지나가던 동무들이 말했습니다. “정홍아, 네 어머니 저기 일하시네.”“잘못 봤어, 우리 어머니 아니야. 우리 어머니는 저런 일 안 해.”다 떨어진 옷을 입고, 길고 힘든 노동에 지쳐 뼈만 남은 얼굴로 일하시는 어머니를, 나는 보고도 못 본 척했습니다.
 
그날부터 사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머니 일하시던 공사장, 그 길 가까이 지나갈 수 없습니다. 내 어린 시절의 부끄러움이 그 길에 배어 비바람 불고 눈보라 몰아쳐도, 아무리 씻고 또 씻고 지워도 그대로 남아서, 시퍼렇게 멍든 상처로 남아서…….
 
 
편지 한 장 (서정홍)
 
우리 어머니
아직도
그 편지 한 장 버리지 않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시집살이
떨쳐 버리고 싶다고 보내 온
큰누님의 편지 한 장
 
우리 어머니
눈물로 얼룩진 편지를 보고
“똥 잘 누는 년이
무어 고되다고 야단이냐.”더니
밤새 뒤척이셨다.
 
우리 어머니
십 년 지난 지금도
그 편지 한 장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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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꼬방 샘들과 좋은 글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늘 저 혼자 끙끙 대고 실천하다가 안 되면 자책하고, 그러다가 어쩔 수 없다고 대충 타협하고 그랬거든요. ㅠㅠ
'교사는 외로운 직업'이라고 같은 학교 선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제가 너무 외롭게 외롭게 교사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말해봤자 통하지도 않을텐데...'하면서 지레 포기하고는 그랬거든요.
그러다보니 오히려 아이들과 더 친해지려고 노력한 것일지도 모르고요. 뭐, 그렇게 친한 것은 아니지만요.ㅋㅋㅋ
 
다들 바쁜 3월, 건강 조심하시고요.
제가 샘들 엄청 좋아하는 거 아시죠~~~~!!!!  ^^
 
 회원이미지김학선1  2015-03-15 10:16   답글    
샘.. 제가 제일 먼저 복사했어요. ㅎㅎㅎ 고마워요. 좋은 자료 아이들이랑 잘 쓸게요. 저도 샘을 좋아하시는 거 아시죠?? ㅎㅎㅎㅎ
    회원이미지송수진  2015-03-15 13:00   답글    
   고맙습니다. ^^ '선물'이라는 주제와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정홍 시인의 삶과 글이 일치하는 가난하면서도 소박한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학선샘, 건강 조심하시고 늘 이렇게 서로 나누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
 회원이미지박정인  2015-03-16 14:10   답글    
눈물 나는 글이에요. 눈물이 핑 돌았어요. 샘 저도 샘 좋아해요.
 회원이미지한창호  2015-03-17 12:48   답글    
고마워요 수진샘!
저도 수진샘이 좋아요!! ^^
 회원이미지하고운  2015-03-19 09:27   답글    
고마워요 수진샘!
저도 수진샘이 좋아요!!
정말 많이 많이 좋아해요!!! ^^
 회원이미지이상용  2015-03-21 12:38   답글    
때로는 자책감과 부끄러움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 같아요.
글 내용이, 서정홍 샘의 삶에 대한 자세가 수진샘과도 닮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좋은 글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회원이미지이정미  2015-04-27 12:08   답글    
고마워요, 샘. 교무실에서 눈물 나는 거 참으며 읽었어요. 좋은 글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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